임명묵 《K-를 생각한다》

90년대 생의 눈으로 보는 90년대 생을 거쳐 이대남을 향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2022년 1월 2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칠십 대와 팔십 대는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민주당과 문재인은 여전히 빨갱이다. 대놓고 빨갱이는 아닐지라도 그 속은 빨갛다고 굳게 믿고 있다. 아버지는 우리들 앞에서 극우 유튜브의 방송을 틀어 놓고는 했다. 아마 아버지는 얘네들이 이 방송을 듣고 진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민주당을 찍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마 우리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였지만...


마찬가지로 오십대의 우리 세대는 어지간해서는 국민의 힘을 찍을 수 없다. 그들의 뿌리가 부정한 독재 세력임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당 합당이라는 희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여긴다. 독재에의 향수 안에서 일정 정도 회귀를 바라마지 않았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더욱 절실히 확인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극우 유튜버의 동영상을 제아무리 들어도 우리의 선택이 바뀔 리는 없다.


세대와 관련하여 이러한 표 분석이야 누구나 하는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빨갱이에 관심이 없고 운동권과 상관이 없는 새로운 세대이다. 최근 몇 년간 이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였고 MZ세대, 90년대생, 이대남 등의 용어로 불렸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연령별로는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로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까지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들 중 남성, 그러니까 이 연령대의 남성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이들은 고착된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데, 이들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공정, 그리고 반페미니즘이라는 구호이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실체 있는 무언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이 이들의 근거 부족한 억하심정에 기름을 부으면서 우리는 그 불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은 삼십 대의 젊은 정치인은 극우와 보수를 망라하는 진영에 위치한 당의 대표가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는 일순간 힘을 기울여 자신에게로 끌어당긴 이삼십 대 그리고 태생적으로 이탈이 불가능한 육십 대 이상 세대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받아 사오십 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여당을 압도하겠다는 세대포위론이라는 구상을 기반으로 선거 운동을 진행시키고 있다.


자식이 없고 (선후배나 동기의 자식이 이십 대에 접어들었다) 사무실에도 이십 대가 없다. 그러니 이대남을 책으로만 배우고 있다.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도 그러한 공부의 목적으로 작년에 읽은 책이다. 바로 그 세대에 속한 이가 전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부터는 김내훈의 《급진의 20대》를 읽고 있다. 저자의 《프로보커터》를 흥미진진하게 읽은 바 있다.


물론 이 얼마 되지 않는 목소리로 이대남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친구를 둔 직원의 말을 듣고 이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펨코(에펨코리아의 줄임말) 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수위가 조금 낮은 일베 같았는데, 직원의 남친과 그 남친의 친구들은 하루종일 이곳을 들락거리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삼십 대 필진의 이러한 책들을 읽는 것이 그나마 사오십 대 중년남이라면 슬플 것도 같다.


얼마전 이번에는 아예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만약 이번에 이재명이 된다면 이재남들이 영영 민주당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했다. 윤석열이 하수인이 되어 이끌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들이 영영 국민의 힘을 적으로 돌릴 수 있지 않겠냐는 속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다들 이대남으로 불리는 이들의 정치적 스탠스를 그리 견고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여하튼 지난해 읽었던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의 몇몇 발췌 부분을 정리한다. 책은 <90년대생은 누구인가>,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이라는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경제적 여건과 매력 자본이 부족한 이들이 갖는 박탈감과 불행감‘으로 해석되는 이들 90년대생, 그러니까 이대남이 어쨌든 우리의 미래이다.


“... 한국 사회의 어떤 요소가 한국을 시대의 급류에서 맨 앞에 서게 한 것일까? 사회를 일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이들을 서열화하는 위계성, 그 피라미드 속에서 어떻게든 위계를 거부하고 상승하고자 하는 상향심, 모든 이들이 표준적인 대세를 따르고자 하고 남들도 대세에 따르게 만들고 싶어 하는 적극적 집단주의, 국가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 모순적 국가관, 도덕을 통해서 발언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도 세속적 성향을 원하는 이중적 심리, 아마 한국 문화의 이런 요소가 세계화, 정보화라는 변화를 맞닥뜨려 이 사회에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을 만들어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p.19, <서문> 중)


“... 온라인 공간에 대한 90년대생들의 강한 의존으로 인해 이들의 투쟁적 에너지는 현실 공간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구체화되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 대중문화가 201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다. 많은 90년대생들이 불경기와 저성장, 계층화, 인터넷의 확산과 같이 그들의 생애와 함께한 경험에서 비롯된 부정적 에너지를 콘텐츠에 쏟았다. 콘텐츠는 그들이 겪는 사회적 좌절을 위로하고 해소하지 못한 원초적 욕망을 (불완전하게나마) 풀어줄 수 있는 훌륭한 대리만족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p.57,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중)


“공정이 20대(90년대생)에게 확고히 뿌리박힌 가치도 아니고, 특정 계층에게 편향된 정당화 논리도 아니라면 왜 그토록 90년대생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90년대생이 제기하는 공정을, 어떤 가치나 정당화 기제보다는 정서적 문제로 바라볼 때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요컨대, 공정에 대한 그들의 외침은 그들이 처한 심리적 압박과 가치의 퇴조라는 배경하에서 형성된 정서적 기초가 특정 이슈와 맞물리면서 터져 나오는 현상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90년대생 사이에서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가 된다... 90년대생이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국가 시스템, 즉 정서적 안정의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가치를 고려할 만한 정서적 여유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성을 늘리는 모든 행위는 그들의 불안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고도의 심리적 압박이 만들어낸 90년대생 전체에 걸친 피해의식이 더해지면, 2010년대 후반을 수놓았던 여러 공정 논란의 성격은 더욱 명확해진다.” (pp.84~86,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중)


“... 진정 중요한 문제는, 코로나19가 동아시아에서 불러일으킨 국가 권력에 대한 요청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방역에 있어서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은 국가가 개방과 주권, 초국적 위협과 국민의 불안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 이전까지 개방을 유지한다는 것은 위협을 감수하고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내몬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개방을 닫는다면 위협도 없고 국민의 불안도 사그라들겠지만 개방이 가져다주는 역동성과 이점은 버려야만 했다. 그런데 만약 개방을 유지하면서도 바이러스라는 초국적 위협을 통제하고, 그리하여 국민들의 불안도 억제할 수 있다면? 이는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어떤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국가가 디지털 촉수를 사회 모든 곳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pp.147~148, <K-방역이 말해주는 것> 중)


“제국, 세계 종교, 이념, 다민족국가가 민족국가에 비해 취약한 이유는 공통 언어와 문화 정체성이 주는 강한 소속감을 그들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슬람교나 공산주의 혹은 자유주의는 보편적 믿음이긴 했지만, 아랍인, 러시아인, 미국인에게는 자신들의 민족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될 때가 더 많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개별 민족집단은 특정 이념이나 종교를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의 핵심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민족이라는 단위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pp.164~165,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중)


“... 이들 대학 교육을 받은 35%가량의 60년대생 엘리트 그룹은, 혁명을 꿈꾸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후 한국 사회의 각종 영역의 핵심 중추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들이 80년대 정권에 반대하는 막강한 힘을 구성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이 고등교육의 수혜를 입은 한국 사회 최초의 대규모 인구 집단이었다는 데 있었다. 혁명을 버리고 고도성장의 절정에 있던 한국 사회 각자에 참여한 순간부터, 그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학생회 활동을 통해 좁은 집단을 넘어서는, 대학가 전반에 걸친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권력을 얻고 대중을 조직하고 의제를 선전하는 방법론을 훈련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IMF 위기로 선배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대거 물러나게 되자 핵심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더욱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머릿수도 점차 줄어들고,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지 못했으며, 넓으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와 집단행동의 경험도 미약했던 후속 세대가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p.259,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중)


“87년에 그들이 바라던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민족해방 사회주의 혁명이었음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한민국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더 정통성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그들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휘둘리는 준식민지가 이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수 세력이 이런 과오들에 대해서 비판하면 그들은 언제 적 색깔론을 꺼내느냐고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면서 논의를 봉쇄했다. 그러는 동안 586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날려보냈다. 반대로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집착한 소수는 대신 정반대로 나아가 뉴라이트가 되었는데, 사실 이들 또한 건전한 반성 대신에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면서 건설적 논의를 오히려 방해했다.” (p.276,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중)


“현대 교육의 문제를 종합하자면 이렇다. 20세기 후반부터 현대 사회는 더욱 많은 지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식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지 못한 하위권은 적절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고, 여기에는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이 양산하는 비효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상당수 대학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낭비적 운영을 이어가고 있고, 상위권 대학 또한 연구에 급급해 수준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갈수록 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상위권 대학의 졸업장, 즉 학벌이 갖는 프리미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이 경쟁에 참여하는 상위 계층의 학생들은 사교육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적극 활용하면서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게 된 반면, 다수의 나머지 학생들은 이제는 비효율적이 된 공교육에 의지한 채로 학교에서 쓸데없는 지식을 머리에 채우며 시간만 죽이게 됐다는 것에 있다. 학벌 경쟁에서 한 번 밀려났을 때 이를 뒤집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 글을 포함하여 한국의 교육 논의에서 가장 문제는 이 버려진 거대한 인구 집단을 사실상 논의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교육 논의는 입시, 그것도 명문대 입시를 위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과연 몇 퍼센트인가. 그러니 모든 국민 교육을 통해 표준화된 인적자원으로 생산해내겠다는 프로이센 교육의 원대한 꿈은 이미 붕괴한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 되었다.” (pp.335~336,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중)



임명묵 / K-를 생각한다 :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 사이드웨이 / 367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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