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거스르는 두 기사의 초상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세상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스페인 라만차의 돈키호테,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김문수 후보.


둘은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그들의 싸움 방식과 신념을 보면 묘한 데자뷔가 떠오른다.


바람개비를 괴물로 본 돈키호테의 환영, 그리고 시대착오적 구호와 신념을 현실 정치에 투사하는 김문수 후보의 정치 행보.


우리는 이 둘을 단지 "엉뚱한 사람들"로만 봐야 할까? 아니면 시대정신을 역설적으로 비추는 거울로 이해해야 할까?


돈키호테는 무너져가는 기사도 정신에 끝까지 집착했다. 그는 이미 사라진 질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악과 선의 경계를 붙들고 싸움을 걸었다.


그의 눈엔 거대한 바람개비도 "사악한 거인"으로 보였고, 주막도 '성'이었으며, 농부의 딸도 '공주'였다. 현실을 애써 왜곡하며 자신만의 이상을 현실에 투사한 것이다.


김문수 후보도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과거는 이제 신화처럼 남았고, 최근의 발언과 정치 행보는 현실과는 점점 괴리를 보인다.


그는 자유와 반공, 종북 척결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반복하며 "깨어있는 좌파의 음모"와 같은 구도를 내세운다.


문제는, 그가 싸우는 적이 "실제 하는가?"이다. 그의 언어는 뜨겁지만, 청중의 체감 온도는 점점 식고 있다. 전장에선 기사의 모습은 분명한데, 그가 향한 창끝은 허공을 찌르는 듯하다.


물론, 돈키호테는 시대의 바보가 아니라 "순수한 저항자"였다. 그가 믿은 세계는 허구였지만, 그의 신념만큼은 진심이었다.


김문수 후보 역시 자기 확신의 정치인이다. 그는 어떤 여론에도, 시대의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이 점에서 그는 오히려 오늘날의 전략가 정치인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다.


문제는, 그 신념이 공동체에 어떤 현실적 이익을 주는가? 혹은 시대 정신과 얼마나 조응하는가? 하는 점이다.


돈키호테는 끝내 병상에 누워 "그 모든 것은 미친 짓이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해석을 철회하고 죽음을 맞는다.


김문수 후보는 여전히 자신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가 돈키호테와 다른 결말을 맡게 될지, 아니면 같은 방식으로 시대를 뒤로한 채 무대에서 퇴장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현실을 보지 않는 이상주의는 때로는 유쾌한 풍자극이 되지만, 그 현실 왜곡이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릴 때, 그것은 단순히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적 비극으로 바뀐다.


김문수 후보는 과연 어떤 이야기의 결말을 쓸 것인가? 많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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