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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답 없는 학문일까

역사는 과거 사실과 현재의 해석

역사라는 학문은 늘 묘한 긴장 속에 존재해 왔다.


역사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facts)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역사가들이 다루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흔적과 자료,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이다.


이 점에서 역사는 수학처럼 유일한 정답을 도출하는 학문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무질서한 상상의 영역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과거 사실과 현재의 해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성찰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학문으로 성립한다.


역사학의 이중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말은 E.H. 카(E.H Carr)의 유명한 정의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 말은 역사가 단순히 고정된 과거의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이 과거를 끌어올려 새롭게 의미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프랑스 대혁명은 19세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시민의 해방으로, 20세기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계급투쟁의 서막으로 읽혔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역사적 의미는 달라졌다.


한국사만 보더라도 이런 해석의 다원성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식민지 수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면, 1960~ 70년대 이후 일부 학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두 시각 모두 일정한 근거와 한계를 지닌 해석으로 평가된다.


또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단순히 "남침전쟁"이라는 틀로만 설명할 수 없고, 냉전 체제 속 동아시아 국제 질서, 남북한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역사가 '사실'만큼이나 '해석'의 층위를 포함하는 학문임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학을 "정답 없는 학문"이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사 연구는 엄밀한 사료 비판과 체계적인 방법론을 요구한다. 특정 사실을 선택적으로 취사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맞추어 왜곡하는 것은 학문적 해석이 아니라 선전(propaganda)에 가깝다.


예컨대 일본의 극우 세력이 시도하는 역사 왜곡은, 단순히 "다른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근거 없는 조작이기에 학문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역사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되, 그 해석이 근거와 논증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분명한 학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역사는 "정답이 하나가 아닌 학문"이지, "정답이 전혀 없는 학문"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fact)은 존재하며, 그것은 기록과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어떻게 맥락화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서 다양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사실과 왜곡을 엄격히 구분하는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과정이다.


오늘날 역사학의 이런 성격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역사 논쟁은 정치적 진영 논리와 맞물려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기억의 전쟁, 서사의 경쟁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경우도 많다. 이럴수록 역사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싸움이 아니라, 다른 시각을 경청하고, 복합적 맥락을 이해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공통의 기억을 형성하는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역사는 완결된 다변화를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사회가 성숙해지도록 이끈다. 역사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은. 곧 우리 사회가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고 열린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결국 "역사, 정답 없는 학문일까?"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 해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역사는 완결된 답안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사회가 성숙해지도록 이끈다. 역사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은 곧 우리 사회가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고, 열린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정답만을 좇는 태도는 위험하다. 하지만 동시에 허위와 왜곡이 난무하는 "정답 없음"의 혼돈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엄밀한 존중과, 해석의 다양성을 동시에 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성찰 속에서 우리는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미래를 향한 지혜를 모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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