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국밥
어릴 때부터 나는 심한 약골이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마당의 초록색 아이스박스에는 매일 야쿠르트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육성회비도 밀리는 형편에 배달 야쿠르트라니
다른 형제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의식하며 나는 야쿠르트를 입술에 묻히고 최대한 천천히 남은 국물을 빨아먹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얼음덩이 위에 놓여 있던 차가운 야쿠르트가 어찌 내 병약한 위장을 보호해 줄 수 있었겠는가
없는 형편에 툭하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어린 딸을 위해 엄마는 좋다 하면 무엇이라도 먹여서 제발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모범생들의 통지표에 항상 적혀있는 문장
나는 책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학교도 가기 전 글자도 스스로 익혔고 신문, 만화, 광고 전단 닥치는 대로 글자를 읽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첫 시험이 예고되었다
그때는 토요일에 자주 시험을 쳤었고 그래서 주말고사라고 불렀다
나는 전날부터 밥을 먹지 못했다
첫 시험을 잘 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끼니를 거르고 공부를 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인생 처음 치르는 시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에 온몸이 바짝 경직되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고 교탁 앞에 선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올백 맞은 사람이 있네. 단단이~~"
"우와~~"
아이들이 박수를 쳤고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기쁨으로 터질 것 같았던 그때의 심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두 걸음을 뗐으려나 나는 책상과 책상 사이 통로에 쓰러졌다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고 선생님이 뛰어 오시고 나를 들어 안으셨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나를 업고 양호실로 가셨다
왜 이렇게 가볍냐 밥도 안 먹냐 선생님의 중얼거림이 동굴처럼 귀에 울리며 나는 선생님의 등에 업혔고 곧 침대에 눕혀졌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선생님이 다시 양호실로 오셨고 잠시 후 엄마가 나타났다
선생님께서 집으로 전화를 하셨는데 혼자 집을 지키던 여섯 살 여동생이 전화를 받았고 동생은 엄마가 파출부로 일하던 집으로 뛰어가 언니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나는 이제 엄마의 등에 업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엄마의 일터로 옮겨졌다
대청마루가 정사각형으로 거실처럼 있는 한옥이었다
주인은 집에 없었다
엄마는 나를 마루에 눕혀 놓고 세 계단쯤 내려가야 하는 부엌에서 작은 양은 냄비를 들고 왔다 소고깃국에 밥 한 술이 말아져 있었다
혀가 델 것 같은 뜨거운 국밥을 할짝이며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빼 바지를 입고 마당을 왔다 갔다 청소를 하며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웃었다
구조된 유기견처럼
나는 남의 집 밥을 얻어먹고 나를 구해줄 엄마의 일이 끝나길 그저 기다렸다
스무 살 즈음 마취 없이 내시경을 했다
비스듬히 누워 호스를 삼키던 순간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때와 똑같은 자세였다
비스듬히 누워 엄마만 쫓아가는 내 눈동자
아플 것도 슬플 것도 없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불안했던 그래서 잠들지 않으려고 몽롱한 의식을 잡아보려 애썼던 그날의 내가 오십이 넘은 지금도 가엽다
팔십 중순의 엄마는 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 한옥집의 구조와 골목과 집주인 부부의 직업도 선명하게 잊지 않고 있었지만
18킬로 야윈 딸을 온기 없는 마루에 눕혀 놓고
주인의 옷을 털며 눈을 맞추었던 그날은 전혀 모르겠노라 했다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이 흩어지는 먼지를 비추며 따스했던 그날의 온도도 아득한 꿈처럼 모두 나만의 기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