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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Dec 22. 2015

내 안의 그랑블루,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

by damotori

내 안의 그랑블루,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


뤽 베송의 역작 ‘그랑 블루’라는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초년병 시절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마크 자욜이 떠올리는 그리스 연안에서의 어릴 적 추억은 잔잔한 흑백 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난 그때 그 무채색의 바다가 아직도 가슴속에 울렁거리면서 여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펼쳐지는 무한한 바다와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그리고 잠깐 동안의 사랑…너무나 감정적이고 격정적이어서 그만 뤽 베송의 팬이 되어버렸던 기억마저 있던 난 그의 영화를  놀랍게도 이탈리아 중부의 조그만 소도시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이탈리아의 서부 해안 그러니까.. 그 유명한 이태리 아드리아 해안의 반대편에 있는 이 서부 해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띠고 있는 천연의 지역인 만큼 일 년 내내 비도 많이 오지 않고 햇볕이 쨍해서 가장 이태리 다운 날씨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탠을 하다가 혹 잠들어 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화상을 입을 정도라고 하니까…대단한 날씨임에는 틀림없다. 


애니웨이… 그랑블루의 작곡가 에릭 세라가 영화적 영감을 얻기 위해 페루를 제쳐놓고 직접 이곳을 여행했다는 일화는 세간의 사람들로부터 이 해안길을 달리는 즐거움을 몇 배로 증가시켜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확히 피에트라산타는 바다가 면한 마을이 아니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로마에서 피에트라산타로 가는 길은 기차로 대략 40여분. 로마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등장하는 대리석 산이 있는 조그만 예술가 마을이 바로 피에트라산타이다. 이 피에트라 산타를 가는 길에 유명한 서부 해안의 해수욕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이 작은 마을을 들어가기 전에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을 거니는 것을 꼭 체험하고 푼 여행자들은 언제나 이곳을 들리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더구나 시원한 물도 없이 계속되는 여행에서 피에트라산타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서부 해안의 해수욕장들은 사막에 비를 뿌려대는 시원한 빗줄기 같은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시원한 해변에서 땀을 식인 후 일정에 있는 작은 마을 피에트라산타로 이동했다. 


왜 피에트라산타를 갔을까?  이탈리아 여행 책에도 없고 지도에도 쉽사리 그 한 줄의 지명조차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동네인 피에트라산타를 찾은 이유는 이곳이 이태리 최대의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와 더불어 세계적인 작가들이 한데 모여 예술활동을 하는 아트 빌리지이자 갤러리였기 때문이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시네마 천국에서 보았던 토토가  뛰어놀던 그 작은 광장은 이태리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공터에 작은 성당이 있고 그 앞에 빙 둘러쌓여 있는 집들과 사람들…피에트라 산타 역시 그와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었다. 


사실 조각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카라라는 지명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연대리석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조각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유학을 와서 마음껏 대리석을 다루어 볼 기회를 갖기를 원하며, 한편으로 가장 많이 이곳에 유학생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웬만한 정도면 거저로 대리석을 얻어 쓸 수 있으니 돈 한 푼 안 들이고  작업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라라라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피에트라 산타는 이러한 카라라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아마 우리나라의 면 단위 정도 되는 마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마을 한복판의 광장은 이곳 출신이거나 현재 이곳에서 작업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전시를 하는 야외 갤러리인 셈이었다.  그리고 옛날 성당을 개조해 현대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마을 전체가 갤러리여서 저녁 7시가 되면 모든 갤러리가 오픈을 한다. 이렇게 밤에 오픈을 하는 이유는 로마에서 근접하고 타 도시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저녁시간을 이곳에서 예술작품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였다. 




저녁 타임에 보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신선했을 뿐 아니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조그만 카페들에서 작가들이 모여 날이 어두워지도록 예술에 대해 논하는 그 풍경 역시도 아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성당을 개조해 갤러리로 쓸 수 있는 여건은 따로 있었다. 이태리의 많은 도시들이 중세와는 달리 성당의 신자들이 줄어 문을 닫는 성당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피에트라산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만 전시장과 박물관으로 꾸며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데 형식적인 것이 아닌 삶의 한 형태로 발전해 실질적으로 다가선 느낌이었다. 마을 뒤편에 어스름히 보이는 흰 산은 바로 대리석 산이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이곳에서 생산되는 가장 비싼 대리석은 우윳빛을 띠고 있는 무결의 대리석으로 한 트럭 분량의 호가가 자그마치 1억 원이나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과 대리석 작품들이 이곳의 대리석을 주 재료로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루이 14세가 살았을 당시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 데 사용한 석재들이 바다 건너 오리엔트에서 날아온 것을 감안해 볼 때 아마도 대리석들은 이곳 카라라나피에트라산지에서 직송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 보았다. 흰 눈처럼 뽀얗게 늘어진 대리석…미켈란 젤로와 베르니니 같은 유명한 당대의 조각가들이 이 천연의 대리석을 가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다프네의 머릿결을 직접 깎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게  뛰어올랐다. 그리스 신화를 거쳐 로마 신화까지 그 상상의 주인공들을 직접 대리석을 통해 만들어 내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돌산에서 역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대도시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은 역사적 흐름을 잡아 여행자가 그 역사의 기행 속에 파묻히는 즐거움을 위한 여정이다. 하지만 그러한 여행지는 책에서도 수도 없이 보았고 굳이 전적을 세우면서 까지 피곤하게 자신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여행은 느낌이며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현재적 시점에서의 조우이다. 


작은 대리석 마을 피에트라산타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그것도 해가 지는 아름다운 마을이 어떤 것인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거리엔 아름다운 아뜰리에가 있고 마을 공터엔 갤러리가 있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해가 다 가도록 예술을 논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고대에 이태리 북쪽의 켈트 족.. 즉, 지금의 프랑스 지방의 갈리아족들의 침입을 피하고 주변 도시들의 전쟁을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산꼭대기에 마을을 짓는 습관이 있는 이탈리아인들이 만들어 낸 작은 마을들은 아직도 건재한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피에트라산타이며 현재의 시점에서 그 자그마한 산 마을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마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X-pan / 45mm F3.5 Fujinon / E100vs, Pietrasanta


그랑블루에서 자크 마욜이 연인의 손을 놓고 결국은 바다로 사라지는 그 장엄한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이 조그만 마을 그 피에트라산타 광장에서 어릴 적 보았던 그리고 꿈꾸었던 작은 돌고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에릭 세라의 바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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