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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May 08. 2019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마음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법  

어른으로 사는 게 지치고 힘들어질 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을 때. 부모님이 계신 고향 안동으로 훌쩍 떠난다. 한 명의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과업과 어른에게 주어지는 각종 의무들로부터 도망치듯 내려가는 안동은 나에겐 잠시 현실에서 멀어지는 도피처이자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충전하는 곳이다.


안동에 도착하면 엄마, 아빠가 터미널로 마중을 나오신다. 지하철이 아닌 아빠 차를 타는 게 얼마만인지. 아빠 차에 타고 엄마 아빠와 손을 맞잡자마자 의식의 스위치가 '안동 모드'로 전환된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속세에서 한 발짝 벗어난 기분. 죄를 지어도 벌할 수 없는 신성한 땅 소도처럼 아무도 나를 해할 수 없는 절대적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다. 안동댐의 물안개와 찬 공기가 신성한 막처럼 나를 감쌀 때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온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맛있는 냄새에 눈을 뜨면 집에 왔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햇살도 어쩐지 더 밝고 이불의 감촉도 바스락 거리는 게 시원하면서도 푹신해 이대로 계속 누워있고 싶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밥 냄새와 함께 깨어나는 따스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낀다. 주말 오전,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던 맥모닝 대신 엄마 밥을 먹으며 안동에서의 느린 하루가 시작된다.        



혼자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자부하다가도 안동에 한 번씩 내려올 때마다 진짜 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서울로 대학을 간 것도, 졸업 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다 내가 원해서 지속하고 있는 삶이다. 어쩌면 지금의 이 삶을 '쟁취'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해 왔으니까. 엄마는 안동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에게 손수 지은 밥을 해먹이며 얘기하신다. "행복이 뭐 별건가. 식구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밥 먹는 게 행복이지" 자신들의 의지로 부모님의 품을 떠난 삼 남매는 아빠가 손수 기른 온갖 야채들로 엄마가 지은 밥을 먹으며 잠시 어린아이가 된다.   


안동에서 며칠 머물다 돌아오면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견고한 일상이 있는 서울도 꽤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마음의 배터리가 충전된 것이다. 오랜만에 출근해 바쁘게 일하는 감각도 좋고 코타츠에서 영화를 보며 집중하는 기분도 좋다. 요가를 하며 땀을 흘리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감각도 비로소 일상에 복귀한 기분을 일깨워줘서 좋다. 이렇듯 진짜 휴식은 '출근하기 싫어'가 아니라 '출근하는 기분도 꽤 괜찮네'하는 감각을 심어주는 것. 또 언제 배터리가 방전될지 모르겠지만 안동에 다녀온 덕분에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코어 근육에 비축한 채 힘들 때마다 이따금 심호흡하며 꺼내 써야겠다. 그러다 일상이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쯤 또 한 번 안동에 다녀와야겠다.  


글 ㅣ 김희성

그림 ㅣ 김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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