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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Jun 02. 2019

비행기 공포증이 있다

난기류는 불편할 뿐 위험하지 않다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고 싶은 꿈이 있지만 사실 나는 비행기 공포증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비행기를 타면 추락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행기를 타자마자 의식적으로 잠들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이륙하기 전에 어서 잠들어야지, 잠들어야지...'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지만 억지로 청하는 잠은 별 소용이 없고 그저 눈을 감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져 기체의 진동이 미세한 떨림까지 잘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요즘에는 타자마자 비행기에 저장되어 있는 영화 채널을 빠르게 탐색해 영화에 몰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비행 거리가 2시간 이내인 건 그나마 낫다. 가장 공포스러운 건 비행기 안에서 삼시 세끼를 다 먹어야 도착하는 거리의 나라를 갈 때다. 밤이 되면 발을 딛고 있는 얇은 철판 아래(물론 얇지는 않겠지만) 시커먼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끔찍한 공포로 몰아간다. 다행히도 비행기를 타는 내내 이런 공포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정말 심각한 상태로 절대 비행기를 탈 수 없었을 것이다. 기내식에 집중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하다 보면 공포는 어느덧 잊히지만 평안한 상태가 계속되는 와중에 갑자기 안전벨트 표시등이 울린다든가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으면 다시 손발에서 땀이 난다.


지금까지 가장 멀리 가본 곳은 뉴욕, 라스베이거스, LA.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유럽 땅은 한 번도 못 밟아 봤다. 그나마 가본 뉴욕, 라스베이거스도 출장으로 간 것이었으니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어 스스로 먼 곳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여행만 하고 살아갈 건 아니지만 크게 보면 여행자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내게 비행기 공포증은 미천한 영어 실력만큼이나 이겨내야 할 대상이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여행자라니.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바다 위에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하게 된다면? 산 위에 불시착해 흔적도 없이 불에 탄다면?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싶으면 머릿속에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봤던 재난의 순간들이 그려진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비행기 공포증은 나를 자주 움츠러들게 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을 때도. 새로운 꿈을 향해 과감하게 인생의 노선을 변경해야 할 때도 그간 내가 가진 걸 다 잃을까봐 두려워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포부는 원대하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자꾸 망설이고 어딘가 과감하지 못한 구석이 있는 안정지향형의 인간. 안정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는 나쁘고, 과감해야 좋은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정확히 배치되는 모습이라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반갑게도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 메일함을 보다 영국 항공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신감 갖고 비행기 타기' 수업에 관한 보도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중 가장 와 닿았던 건 이 항목이다. '난기류는 불편한 것이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 나는 요즘 비행기에서 불안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난기류는 불편할 뿐이다. 위험하지 않다'를 반복해서 되뇌고 심호흡을 반복한다. 


꿈을 향한 여정에서도 난기류를 가끔, 어쩌면 자주 만날지도 모른다. 그 때마다 자주 불안하고 두려워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도 '자신감 갖고 비행기 타기'의 법칙을 기억하자. 난기류는 불편할 뿐 위험한 게 아니라는 것을.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산 위에 불시착한 비행기라든지 바다 위에 갑자기 내린 비행기를 떠올리는 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기류의 변화로 비행기가 잠시 흔들리는 것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그저 내가 할 일을 하면 그뿐,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은 미래에 맡겨두면 되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려워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난기류도 못 만나겠지. 무섭고 두렵더라도 일단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이유다. 


글 ㅣ 김희성

그림 ㅣ 김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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