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그대를 생각하는 시간
by 두근거림 Aug 03. 2018

현관에서 당신을 반기는 건 무엇인가요

여름휴가를 받아 3일간 여행을 다녀왔어요. 낯선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 아침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저의 바람대로였어요. 자연경관이 좋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감상하고, 맛있다는 현지 음식도 먹고, 숙소에서 커튼을 치고 정오까지 늦잠을 자기도 했어요. 나를 얽매고 있는 사람, 환경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진실된 나를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즈음이었어요. 양 손 가득 들린 짐들 때문에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어요. 막연하게 티브이를 보고 계신 어머니, 샤워를 하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했는데 저를 반기는 건 적막이 도는, 불 꺼진 현관이었어요. 그 광경에 여행지에서 느꼈던 환희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현실감만이 저를 짓눌렀어요. 휴가가 5일이나 더 남아 있었지만 가깝게는 여행에 가져갔던 짐을 정리하는 모습부터, 멀게는 밀려있는 업무를 처리할 6일 뒤의 제가 보였어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1분 남짓한 시간에 말이에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는요. 책을 펼쳐도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덮고, 티브이를 켜도 계속 채널을 돌리기만 했어요. 낮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은 오지 않고, 누구에게도 연락은 오지 않고 연락하지 않았던 무더운 여름날. 방 안에서 시간과 씨름하여 무의미하게 있었어요. 쉬는대도 쉬는 것 같지 않은, 무엇을 해야 나를 위한 시간인지 어렵다는 고민과 함께요.


그때, 아버지께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시계에 적혀있는 시간은 오후 6시. 누나의 조카들을 돌보는 어머니께서는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시기 때문에, 저는 나가보지 않고도 아버지라는 걸 알았어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곧장 씻으러 화장실로 가셨어요. 깔끔한 성격이시거든요. 집 안에 다양한 물건을 쌓아놓고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와 다르게 '정리란 버려야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주 티격태격하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은 겉 보기에는 깨끗한데 서랍만 열면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쏟아져요. 저도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집은 만물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봐요.


샤워를 마친 아버지는 부엌으로 가 어떤 음식을 뚝딱 만들었어요. 자글자글한 기름 소리가 들린 걸로 보아 좋아하시는 김치제육볶음을 하신 것 같은데. 티브이 소리가 켜지는 걸 보니 식사를 시작하시네요. "수호야 밥 안 먹냐"라는 말에 "안 먹어요"라고 대답한 저는 아버지께서 어떠한 표정이나 자세로 어떤 음식을 드시는 지 정확히 확인할 겨를이 없었어요. 없었지만, 저는 알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특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시는 날에요.


기억해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 손에 들린 과자와 장난감.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표정과 짐을 한편에 내려두고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던 모습까지 도요. 동네 친구들과 뛰어노느라 땀범벅이 된 나를 씻겨주시며 "까마귀가 형님이라 부르겠네"라고 농담하시던 시간과 대조적으로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눈 한 번 맞추기가 어렵네요.


괴로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픈 날에 떠올리는 건 사람이에요. 휴식이 먼저 떠오른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저를 돌봐줄 사람을 떠올려요. 위와 같은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와요. 알람처럼 '나 내일 괴로울 거예요' 또는 '오늘 오후부터 발열이 시작됩니다'라고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전긍긍하며 친구 목록을 살펴봐도 선뜻 연락할 친구가 없고, 아픈 저를 간병해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더더욱 없어요. 여기에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이 도와줄 단 하나의 집단이 있어요. 바로 가족이에요.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가면 만날 수 있고, 간병이 당연한 관계.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내 발자취를 조심스레 새기고 있는 나는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지 않네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날에는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데. 어느새 소파에 기대어 졸고 계신, 고단해 보이는 아버지를 위한 말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요. 자식이 잘 되는 게 부모를 위한 가장 큰 효도라고 하던데.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울한 저에게 효도는 다른 가족의 이야기처럼 다가와요. 한 번씩 마주 보고 앉을 때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으시는 아버지. 한 차례 이직을 하고 한 분야에서의 경력이 5년이 되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저에게 결혼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오네요.


오늘에 이르러 아버지께서는, 과거의 아버지가 바라던 모습으로 살고 계신 걸까요.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이 가물거리는 저는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혼자 밥을 차려먹는 게 익숙해진 우리 가족. 오늘 이 기회를 빌어 한 가지 약속을 하려 해요. 가족 중 누군가가 현관에 서면 인사할게요.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면 "다녀오셨어요", 제가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요. 반대로 나가는 상황이라면 "다녀오세요" 또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요. 비록 어렸을 때의 해맑음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보았던 두 분의 모습을 어른이 된 제가 닮아가기 위해 노력할게요.


생각을 멈추고 방문을 열고 나가 "들어가서 주무세요"라는 말을 건넨 뒤 상을 치웠어요. 매일같이 드시는 술의 양도 늘어 오늘은 막걸리 두병을 드셨네요. 무엇이 그리 힘드셨나요. 묻지 못 한 저는 침대에 돌아 누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 아침에는 꼭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드려야지 하며 속삭였어요.


현관에서 여러분을 반기는 건 무엇인가요. 고요한 적막인가요, 애완동물인가요, 무표정인가요, 아니면 미소를 머금은 반가운 인사인가요.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옆집 이웃에게, 학교 친구에게, 고객에게는 늘 했지만 가족에게는 소홀히 했던 말을 꺼내 보아요. 회사에서, 이웃집에서, 학교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에 꺼냈던 그 말들을요. 각 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게 될 우리의 집, 현관에서.

magazine 그대를 생각하는 시간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순간의 두근거림으로.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