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화, 서울경제신문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Ph.D)
[요약] “취미를 뛰어넘어 사업으로!” 만들고, 또 모으고. 단순 취미를 사업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의 셀프 브랜딩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간단한 과정으로 그럴듯한 자랑거리를 뽐낼 수 있는 초보 베이킹부터 배우지 않고는 도전하기 쉽지 않을법한 가구·수제화 등에 이르기까지 제 손으로 직접 다듬고 만드는 사람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과거 요리나 뜨개질(자수) 등은 여성들의 집안일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퇴색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이젠 엄연한 취미로 자리매김했다. 알음알음 배웠던 기술도 이젠 전문가를 찾아가 직접 배우거나 책을 뒤지거나 블로그 등 인터넷 매체를 스승 삼아 독학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요리나 베이킹 등 활용도가 높은 ‘만들기’ 분야에서는 파워 블로거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소규모 교실을 운영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모 케이블 TV에서 진행한 일반인 대상 요리대결 프로그램인 ‘마스터세프코리아 시즌 4’의 우승자도 동네에서 유명한 요리 선생이었다는 것이 후문이다.
혼자서 뚝딱 해 치울 수 있는 취미나 소일거리 차원을 넘어 전문가로 자부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 원목가구 만들기다. 2005년 3월에 개설된 네이버 카페 ‘우드워커’엔 22만 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나무와 대패를 배우는 초급과정은 물론 의자·침대 등 직접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고급과정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하며 만든 가구로 전시회도 여는 등 제법 전문가답게 활동하고 있다.
지역의 공방도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헤펠레 목공방 목동지점은 목수였던 유우상 대표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3층 규모의 공방이다. 원목을 다듬는 소잉 테이블(sawing table) 등 전문적인 장비와 도구를 갖추고 있어 의자, 침대 등 대형 가구도 만들 수 있어 배우면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목수에서 공방 대표로 변신에 성공한 그는 “1990년대 목동에 아파트 조성 붐이 일어나면서 전문업체의 가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 목수로서 일감이 점차 줄어들었다”면서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목수 일을 관둘 때 나무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취미가 고급화하는 것을 보고 공방을 차리게 됐다”며 교육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원목가구 만들기에 뛰어든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대기업 다니는 직장인, 교수, 정신과 전문의, 벤처 투자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부터 전업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원목가구 만들기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젊은 주부들의 관심은 합성화학물질로 된 마감재로 인한 새가구 증후군 걱정 없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데 있다. 시중가 100만 원 정도의 원목가구를 직접 만들면 절반 가격 정도면 충분하다. 목공방 등에서 월 15~30만 원 정도로 약 6개월 과정을 거치면 거의 모든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며, 공방에 구비된 큰 장비를 이용할 수 있어 완성도 높은 가구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
만들기 열풍은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몰입의 행복을 느끼려는 취미의 전문성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것을 갖고자 하는 취향의 진화 발전이 교차하면서 빚어진 사회적인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만들기 역사를 따져보면 동굴벽화를 그렸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야생 동물의 뼈와 손으로 그린 암벽화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인류가 손으로 예술에 이르는 창의적인 활동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류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지 않아도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친 산업혁명기 이후, 그러니까 약 100여 년 정도에 불과하다. 분업화와 기계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가격마저 내려가 ‘만들다(make)’ 보다는 ‘사다(buy)’가 더 친숙하게 된 것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늘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살았던 인간. 인간은 만들면서 창조를 배우는 게 아닐까. 연구에 따르면 만들기는 인간의 뇌 활동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유니언 메모리얼병원의 의학박사 쇼 윌기스는 “손은 뇌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도구”라고 하면서 손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정의 내렸다. 만들기는 인간이 두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뒤부터 본격화하였다. 두 손을 자유자재로 쓰기 시작하면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던 고인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뜻이 ‘손재주가 좋은 사람’ ‘손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교육 전문가들은 손의 활동이 지적능력을 향상할 뿐 아니라, 창작과 표현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손으로 쓰고, 그 손을 움직이면서 다시 뇌신경이 자극을 받으면서 손과 뇌가 서로 반응을 주고받는 것이다. 결국 창의력과 기억력이 만들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손을 써서 만들기에 전념하는 순간, 주변의 소음마저도 흡수시켜버리는 몰입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돈이나 보상이 없어도 삶을 즐기는 순간,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 몰입을 체험한다”면서 “몰입의 순간은 삶의 질을 끌어올리며 행복에 이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들기는 삶의 보람을 찾고 즐기는 과정으로 몰입에 빠져들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취미로서 만들기는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취향의 발전은 사회의 다양성과 경제적 여유와 관계가 있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해외여행에 친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똑같은 모양의 기성품보다는 독특한 디자인을 한 나만의 ‘온리원’ 상품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면서 아이 침대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30대 부부, 새로 이사 갈 집에 모든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볼 야심찬 계획을 세운 중년의 주부,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의 간식거리를 직접 만들기 위해 베이킹을 한다는 초보 주부 등 진정한 ‘나’만의 것을 갖고자 하는 소박한 그러나 담대한 꿈이 이 같은 만들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하고 있다. 그 덕에 출판계에서는 요리책, 규방공예, 목공예 등 취미관련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만들기의 종류를 따져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크게 나눠본다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것 만들기는 과자와 빵 등을 포함한 베이킹과 초콜릿, 김치부터 한식과 양식 등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해 내는 요리, 집에서 직접 발효과정을 거치는 맥주와 전통술, 손으로 직접 덖어 내거나 발효시켜서 만드는 차(茶), 도시에서도 직접 벌을 길러서 꿀을 채취하는 도시양봉 등이 있다.
먹을 수 없는 것 만들기에는 천연재료로 비누부터 미백 에센스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천연화장품, 작은 수납장에서 식탁·침대에 이르는 가구, 한 땀 한 땀 이어서 조각보를 완성하는 규방공예, 십자수·퀼트·펠트 등 서양자수, 필통부터 가방까지 명품 부럽지 않은 완제품을 내 손으로 만드는 가죽공예, 한결같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천연염색, 내 발에 꼭 맞는 수제화, 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는 도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미술 등이 있다.
만들기는 단순한 고급 취미에 머물지 않고 창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성주에 위치한 규방공예 전문샵인 한따미를 운영하는 장진영 대표는 전업주부로 취미 삼아 15년 넘게 천연염색과 규방공예를 배우던 차에 2012년 예비 사회적기업 창업 공모에 당선돼 회사를 차렸다.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회계부터 노무까지 회사 운영에 필요한 실무와 이론을 전수받고 작지만 알뜰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엔 경상북도 도청에서 실시한 독도 기념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한따미는 천연염색과 조각보를 현대화한 가방과 커튼, 성주의 트레이드마크인 참외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성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커나가고 있다.
수제 맥주, 퀼트와 펠트, 천연비누와 화장품 등은 이미 작은 규모의 창업이 활성화하고 있으며, 목공예의 경우 가정 인테리어와 연계해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20조 원을 넘어선 DIY(Do It Yourself) 인테리어 용품 시장은 꾸준하게 성장해 올해는 28조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취미에서 창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만들기’는 몰입을 통한 행복을 맛보려는 현대인들을 겨냥한 DIY 시장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청소년을 위한 창의력 강화와 연계한 교육사업으로도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