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화, 서울경제신문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Ph.D)
[요약] 프랑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슬람 여성의 전신 수영복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드러내는 옷이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이유라고 했으나 테러로 인한 이슬람 반대 정서라는 의견이 다분합니다. ‘부르키니’ 착용 금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견해를 소개합니다.
지난 8월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바닷가에서 네 명의 무장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윗옷을 벗고 있는 이슬람 여성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1이슬람계 여성을 위해 고안된 수영복인 부르키니를 벗으라는 경찰의 지시에 따르는 장면이었다. 이 사진은 논란이 됐고, 해변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해야 할지, 허용해야 할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렸다.
프랑스 내에서는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8월 25일 부르키니 착용 금지를 지지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프랑스 전역에서 금지하겠다며 더욱 강력하게 부르키니 착용 금지를 지지하고 나섰다. 설문조사에서도 과반수가 부르키니 착용을 반대했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여론조사기관 IFOP에 따르면 ‘착용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 중 64%로 우세하게 나왔다. ‘착용을 지지한다’는 의견은 6%에 불과했다.
부르키니(burqini)는 눈을 제외한 신체를 모두 덮는 이슬람 여성복인 부르카(burqu)와 신체 대부분을 드러낸 여성 수영복인 비키니(bikini)의 합성어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레바논계 패션 디자이너 아헤다 자네티(Aheda Zanetti)가 고안했다. 수영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슬람계 여학생을 위해 디자인한 부르키니는 이슬람교의 율법인 샤리아에 맞게 손발 끝과 얼굴만 내놓은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선 햇빛에 의한 피부 손상을 막기 위해 몸을 가리는 래시가드(rashguard)가 수영복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비슷한 복장으로 보이는 부르키니는 왜 유럽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을까?
프랑스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인 이유는 전통적인 가치관인 세속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속주의란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사회적 원칙으로 21905년 12월 9일 아리스티드 브리앙 의원의 주도하에 채택하게 됐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깊었던 프랑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세속주의는 자유·평등·박애, 애국주의와 더불어 프랑스 공화국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으로 프랑스 헌법 제1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공화국이란 것을 엄격히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조 1항>
프랑스는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불가분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률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다.
근대 이후 프랑스가 종교로 인한 심각한 갈등을 겪은 것은 위그노 전쟁(Huguenotes Wars 1562~1598)이 벌어진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은 37년에 걸친 종교 내전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극에 달한 참혹한 역사이다. 종교전쟁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상인계층으로 개신교도의 주축을 이룬 3위그노 대거가 프랑스를 이탈하여 스위스, 독일 등지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인적자본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과 경제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프랑스 내의 종교적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프랑스혁명 때에는 가톨릭과의 갈등을 빚는 등 1900년대까지 프랑스는 종교로 인해 불안과 혼돈의 시기가 이어졌다.
프랑스는 세속주의 전통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어떠한 종교적인 표현을 드러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대형 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할 수 없으며, 같은 맥락으로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도 내걸지 못하게 되어있다. 지난 2011년 브루카를 착용한 이슬람 여성이 프랑스에서 2년의 감옥형과 5,0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는 사건 역시 공공장소에서 종교적인 표현을 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부르키니가 최근 사회적인 논란의 중심에 선 실제 이유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가담한 잇따른 테러로 인한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에 기인하고 있다. 2015년 1월 7일 22명의 사상자를 낸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사건, 지난 7월 14일 니스에서 벌어진 트럭 테러로 77명이 사망하는 등 충격적인 테러는 프랑스 사회 전체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내몰고 있다. 샤를리 엡도 사태 이후 프랑스는 국가비상사태다. 게다가 시리아 내전이 터진 후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이슬람 혐오(Islamophobia) 정서가 뒤엉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무슬림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반감은 언제부터 커졌을까. 1960년대 이후 유럽 각 지역에 노동인구 감소와 3D업종에 대한 기피현상으로 도시 외곽에 빈민촌이 형성되면서 이슬람계 이민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됐다. 이슬람계 이민 1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이민을 결정해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불만이 적었으나, 세대교체가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무슬림 이민자 2세 중 일부는 프랑스인이면서도 주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어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주도한 테러에 가담하기도 했다. 프랑스 내 무슬림 이민자들은 불법 체류자들이 아니다. 대다수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거주하다가 프랑스 정부의 공식 루트로 이주해 싼 노동력을 프랑스에 제공했다. 오늘날의 멋진 프랑스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다.
테러로 인한 불안과 공포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르키니에 있는 게 아니라면서 부르키니 착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4지난 8월27일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프랑스 일부 법원의 결정에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인 국사원(Conseil d'Etat)은 인권단체가 발뇌브-루베 시의 부르키니 금지 조치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금지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지자체가 이슬람 수영복인 부르키니 착용이 공공질서를 위협한다고 증명할 수 있을 때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위험이 없다는 것. 국사원의 결정이 내려진 시기는 니스에 트럭 테러가 발생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5국사원은 “니스 트럭 테러 등 테러 공격으로 인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감정에만 의거한 채 부르키니 착용 금지를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국사원의 이 같은 결정에 일부 프랑스 지자체에서는 즉각 불복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 내에도 부르키니 착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무슬림 이민자 출신인 나자트 발로 벨카셈 교육장관도 부르키니 착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부르키니 착용 여부는 개인의 문제로 부르키니를 입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서구사회가 이슬람 차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식돼 이슬람 급진주의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 안 이달고 파리시장 등도 착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측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부르키니 논란 대신 사회통합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르키니 사태는 무슬림 혐오와 잇단 테러로 인한 공포 분위기가 이슬람식 수영복을 입은 여성을 향한 공권력 발휘로 촉발된 사건이다.역사적으로 종교로 인해 참혹한 전쟁까지 겪으면서 세속주의를 사회적 원칙으로 내세운 프랑스 정부는 테러로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부르키니 착용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무슬림 젊은이들이 가담한 테러를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프랑스 도시의 변두리에 소외된 채 살아가면서 히잡과 부르카 등 이슬람 전통복장을 입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외로운 늑대’를 양산해 낸다면 프랑스를 넘어 유럽 아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를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세속주의에 버금가는 또 다른 프랑스의 정신이자 가치관인 자유·평등·박애 사상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