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미디어 리터러시의 연관 검색어로 뜬 지는 오래된 일이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가짜뉴스의 대안으로 제시돼왔기 때문이다. 강한 제재엔 반발이 클 수 있으니, 정보를 접하는 이들의 판별력을 높이는 게 낫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탓이다. 이 같은 접근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권장돼야 한다. 그러나 궁금했다. 가짜뉴스의 대안으로 제시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진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자체 연구를 진행했으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언론 불신과 뉴스 리터러시의 과제’ 세미나1)를 개최했다. 본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맡고 있는 4명의 강사와 6명의 수강생을 만났다. 결과는 씁쓸했다. 현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수강생의 ‘정보에 대한 판별력’을 높이는 데에는 분명 기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언론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수의 수강생(5명)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언론 신뢰도’ 하락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신뢰하는 편이다’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언론의 왜곡 보도) 사례 드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수강하며 ‘진영에 따라 다르구나’, ‘자기들 프레임으로 시각을 몰아가고 있구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되더라.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_수강생A
“강의를 듣고 나니까 (언론의 왜곡 보도가) 더 눈에 띈다. 더 눈에 잘 보이니까.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였으나 그보다도 더 신뢰하지 않게 된 편이다. 통계를 보면서 ‘뭔가 생략됐다’고 느껴졌는데 팩트체크를 해보니 누락하고 계산된 부분이 있었다.”_수강생B
“(언론은) 알면 알수록 더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니냐. 언론사들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수정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싶을 때가 있다…(중략)…기자(개인) 위에는 회사의 방침이 있다. 그 입장에 반하면 기자들은 잘리게 되니까, 운영자의 이야기를 안 들을 수 없다.”_수강생C
미디어 리터러시 수강생들이 밝힌 언론 신뢰도 하락의 원인은 비슷했다. 수강생A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과정에서 언론의 왜곡 등 부정적인 사례에 지속해서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강생B는 특정한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팩트체크를 하는 실습 과정을 거치며 언론 신뢰도가 하락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수강생C는 언론사의 지배구조 등을 배워보니, 외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강사들이 ‘언론을 믿으면 안 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인터뷰에서 만난 한 강사는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표현에 대해 “심적으로 이해하지만, 여파를 생각해야 한다”라며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을 때 언론에 대한 신뢰 등 잃게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기자와 기사를 쓰레기라고 하면 안 된다고 강의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신뢰도가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디어 리터러시 강사들은 또한 정보를 판별할 때 ‘정치 성향’이 작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게이트키핑’, ‘견제’, ‘감시 장치’ 등이 더욱 중요한 판단 근거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강사는 “게이트키핑 규모가 중요하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조선일보나 경향신문 등이 편향이 없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타 매체보다는 훨씬 신뢰한다”고 말했다. 다른 강사 역시 “좋은 기사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기사에 다양한 관점이 포함됐는지, 시청자위원회나 독자위원회 혹은 노동조합 등 견제 장치를 두고 있는지,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갔을 때 그것을 바로잡는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라고 수강생들에게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미디어 리터러시 강사들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이 언론 신뢰도 하락을 경험한다”라는 말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대체로 수긍했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례(언론 왜곡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준다. 문제 있는 사례가 계속 나오니까. 문제가 있는 뉴스만 보여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역시도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언론의) 좋은 건 하나도 안 보여주면서, 잘못된 보도만 보면 그것만 신경 쓰게 되니까.”_강사A
“그럴 것 같다. 비판과 비난을 분간해서 봐야 하는데, 강사들은 안 좋은 것을 먼저 내놓는다. 양면을 보여줘야 하는데, ‘거짓’을 찾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뉴스가 가짜가 아닐까 생각이 들 것 같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한쪽으로 몰아가서 리터러시를 이래서 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걸 많이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 그런 부정적 사례를 더 많이 보여주거나 ‘이래서 니가 알고 있는 건 다 가짜야’라고 수업하면 안 될 것 같다.”_강사B
“동의한다. ‘비판적 사고’와 ‘불신’은 한 끗 차이 아닌가. 자칫하면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면서 사례를 제시하게 되는데, 쓰레기 만두나 체리 협찬·광고(뉴스타파), 우지라면 등 극단적인 사례들이 수강생들의 주목을 끄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이 언론의 현실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데 좋은 사례이지만 ‘언론의 신뢰도’로 생각해보면 불신으로 흐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 같다.”_강사C
미디어 리터러시 강사들은 수업 과정에서 부정적 언론 보도 사례를 지속해서 언급하는 게 수강생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하락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측했다. 정확했으나, 어디까지나 결론을 알고 본 뒤늦은 해석일 수 있다. 아쉬웠던 점은 사전에 이와 같은 현상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염두에 둔 수업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한 관심과 그에 대한 지원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원은 ‘가짜뉴스와 팩트체크’를 주제로 한 강의에 편중됐다. 한 강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에도 가짜뉴스나 팩트체크를 아이템으로 하는 수업이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커리큘럼 중 한 부분 정도였다면, 지금은 4차~12차시까지 많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다른 강사들 역시 유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팩트체크 관련 강의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는 데에는 분명 효과가 있다. 다만, 팩트체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을 잡아낸다’라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강사C의 말처럼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중심으로 구성된 현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반드시 점검할 부분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언론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강사들 역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언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이번 연구에서 만난 두 명의 수강생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듣고 언론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한 수강생은 “선생님의 ‘뉴스가 다 거짓은 아니다’, ‘웬만한 기자들은 오보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언론사가 그냥 보도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뉴스를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서 내보낸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뉴스는 사실 관계만 다뤄야 하고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배우고 나니까 기자의 주관적인 시각을 첨가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경험을 공유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목표는 ‘정보의 판별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를 높여 민주 시민으로 거듭나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언론사들의 관점의 차이는 ‘팩트’의 영역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그것이 언론 신뢰도 하락의 원인이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특정한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은 무너진다. 이것만 기억하자. 미디어 리터러시의 목표가 언론 신뢰도 하락은 아니지 않나.
1) ‘언론 불신과 뉴스 리터러시의 과제’ 세미나. 2021.11.24.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