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
(프라이머리, "3호선 매봉역 (Feat. Paloalto, Beenzino)" 中)
요즘 음악 트렌드의 변화는 참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잠깐만 한눈팔아도 곧바로 유행이 바뀌어 버리고, 또다시 새롭게 변해버린 트렌드에 귀를 적응시켜야 한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장르인 케이팝은 더더욱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2010년대 중반 즈음에는 샤이니의 "View", 에프엑스의 "4 Walls"를 필두로 딥 하우스 / 트로피컬 하우스 사운드가 유행하더니, 2010년대 후반에는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을 비롯한 뭄바톤 음악이 주류로 올라섰다. 그러더니 2022년 뉴진스의 등장 이후로는 드럼앤베이스, UK 개러지, 저지 클럽 등 이지-리스닝 계열의 댄스 뮤직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씩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듯 새로운 장르를 케이팝 안으로 들여오는 아티스트도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케이팝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블랙핑크 제니다.
지난 3월 발매된 제니의 "Like JENNIE"는 명실상부 2025년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다. 제니의 첫 솔로 정규 앨범 타이틀곡으로서 숏폼 바이럴을 타고 전세계를 휩쓴 이 곡은 그 흥행 성적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도 기록할 만한 의의를 지녔다. 바로 '베일리 펑크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를 케이팝에 본격적으로 흡수했다는 것이다.
베일리 펑크.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기원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민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카리오카(Carioca)를 사용해 '펑크 카리오카'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한 번만 들어도 곧바로 파악될 정도로 특징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베일리 펑크 아티스트인 아니타(Anitta)의 노래를 들어 보자.
가장 쉽게 캐치할 수 있는 특징은 리듬이다. 일반적인 음악과는 달리 베일리 펑크는 중간 박에서 킥이 치고 들어와 싱코페이션(당김음)을 만드는 비정형적인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브라질의 습하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피부로 와닿는 듯한 특유의 리듬 패턴은 텁텁한 듯하지만 들을수록 절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신묘한 매력이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파벨라(Favela)에서 시작된 베일리 펑크는 브라질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장르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직 인지도가 낮았다. 허나 최근 한 팝스타가 자신의 신곡에서 베일리 펑크 장르를 채택한 것을 계기로 베일리 펑크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전세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더 위켄드 (The Weeknd)다.
지난해 발매된 더 위켄드의 곡 "Sao Paulo"는 앞서 소개한 베일리 펑크의 여왕 아니타와 함께 특유의 관능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현 시대 가장 위대한 팝스타 중 하나로 꼽히는 더 위켄드의 선택을 받은 베일리 펑크는 단숨에 가장 핫한 장르로 떠올랐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트렌드세터 제니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했다. 베일리 펑크 장르로 믹스테이프를 발매한 적도 있는 스타 프로듀서 디플로(Diplo)를 초빙해 케이팝과 베일리 펑크의 세련된 융합을 선보인다. 제니의 이름을 연호하는 중독적인 훅과 지코(ZICO)가 써내린 한국어 랩이 브라질의 열기를 담은 베일리 펑크 비트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흐름에 슈퍼 루키 미야오(MEOVV)도 합류했다. 베일리 펑크를 차용한 신곡 "HANDS UP"은 현란한 리듬과 쿵쿵대는 베이스, 주술적인 리드가 형성하는 긴박한 속도감이 인상적인 곡이다. 베일리 펑크 특유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가히 올해 최고의 케이팝 뱅어 트랙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베일리 펑크와 케이팝의 파트너십은 의외로 꽤나 유서가 깊다. 가까이로는, 데뷔곡 "O.O"부터 지난해의 "Sonar (Breaker)"까지 베일리 펑크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오고 있는 엔믹스가 있다. "O.O"는 케이팝의 문법 하에 베일리 펑크와 록을 접붙인 파격적인 '믹스팝'으로 엔믹스의 음악적 정체성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수작이다.
'권모술수냐' 챌린지로 알려져 있는 "Sonar" 역시 베일리 펑크와 UK 개러지를 접합한 믹스팝 곡인데, 타격감이 두드러지는 드럼 믹싱이 특히 인상적이다. 장르 특유의 청각적 쾌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최고의 K-베일리 펑크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외에도, 거슬러 올라가면 최소 한 해에 한 곡씩은 베일리 펑크를 시도한 케이팝 아티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2023년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제왕 에이티즈(ATEEZ)가 "미친 폼 (Crazy Form)"에서 베일리 펑크 장르를 선보였다. 2022년에는 EXID가 카슈미르(KSHMR)식 EDM 사운드와 베일리 펑크를 접목시킨 "불이나"를 발표했다.
2021년에는 블링블링이 "G.G.B"에서 브라질의 열기가 물씬 풍기는 정통 베일리 펑크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2020년에는 마마무의 곡 "AYA"가 후렴과 후반부 변주 구간에서 베일리 펑크를 차용해 신선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음악은 비행기 없이도 전 세계를 횡단한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반도에 도착한 베일리 펑크는 이제 케이팝과 손을 잡고, 더 넓은 세계로의 두 번째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를 새로운 리듬으로 춤추게 할 그 여정을 한껏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 위 글은 2025년 6월 27일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구독 설정을 통해 더 많은 리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빈의 케이팝읽기>를 구독하시고 매주 업로드되는 K-POP 리뷰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