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에 너그러운 나라
미국 경찰은 우리나라 경찰보다 무섭다. 근육도 우락부락하고 총도 갖고 다니고, 항상 선글 끼고 다니면서 표정도 없다. 우리나라 경찰이 총을 소지하지 않으면서, 주로 민원 처리에 투입되고 과잉 공권력 행사를 스스로 조심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경찰을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면, 미국인들은 경찰을 '일단 피하고 싶은 사람'으로 본다(고 한다).
"그냥 외모가 안무서웠어요. 얼굴이 착해보이고... 차도 귀여워 보이고... 허리에 총도 없고... 근육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뭔가 푸근한 아재 느낌?"
"미국인들은 어떻게 느낄까요? 원래 시민은 경찰에게 보호를 느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불신, 불안을 느끼고 위협까지 느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j2mavvTLI&app=desktop&ab_channel=%EC%98%AC%EB%A6%AC%EB%B2%84%EC%8C%A4
왜 미국 경찰은 무서울까? 역사문화경제적인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린 비교법적 결론은 헌법 상 수사권에 많은 권한이 주어져서이다. 경찰력 (물리력으로 대표되는) 자체가 막강하기 때문에 그런 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시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형사소송법에서 인정하는 경찰력은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인정하는 경찰력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미국법에서 경찰력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은 상당히 제한돼있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한국법과 비교했을 때 미국법에서 체포·수색의 범위는 넓고,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이 적용되는 범위는 좁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을 체포하려면 원칙적으로 체포영장이 있어야 한다. 영장 없이 체포를 하려면, 예외적으로 (1)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3 긴급체포 또는 (2) 같은 법 제212조 현행범 체포의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만약 이런 예외 요건이 없는데도 영장 없이 체포를 했다면 그러한 체포는 위법하다. 그 결과 체포된 사람은 체포적부심사에서 석방될 것이고, 위법하게 체포됐으므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위법한 체포에 줄줄이 이어서 수집된 증거는 다 못쓰게 된다.
미국에서도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 체포영장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영장이 없어도 적법하게 체포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너무너무 넓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처럼) 원래는 영장이 있어야 체포가 가능한데, 예외적으로 영장이 없어도 체포할 수는 있어,'가 아니라, '영장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느낌이다.
"경관 두 명이 저희에게 다가오더라구요. 저희가 마약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체포됐어요. 경찰서로 연행됐어요. 저는 정말 비디오 게임을 사러 그냥 걷고 있었어요. 갓 15살이었어요."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3126695
우리나라의 긴급체포와 미국의 영장 없는 체포를 비교해보자. 우리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3 긴급체포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피의자가 저질렀을 거라고 의심되는 범죄가, 사형ㆍ무기 또는 장기 3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로 처벌되는 것쯤은 되는 중죄여야 한다.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의심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거나, 이미 도망갔거나, 혹은 도망갈 우려가 있어야 한다.
지금 너무 긴급해서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 여유가 없어야 한다. (지금 눈 앞에서 지명수배자를 발견했다거나)
그리고 이 모든 4가지 요건, 즉 1번부터 4번까지는 모두 AND로 연결된다. 1번부터 4번까지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경찰은 그 피의자를 체포하지 못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2번 (플러스 가끔 1번) 만 있으면 된다. 경찰은 아무리 영장을 받을 시간이 많아도,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상당히(probable cause to belive that the suspect has committed or is committing a crime)" 의심되기만 하면 피의자를 바로 그 자리에서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오히려 공공장소, 그러니까 길거리, 식당, 도서관, 공원, 학교 캠퍼스와 같이 피의자의 집이 아닌 장소에서는,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있다. 그냥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의심되는 정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기만 하면 된다. [United States c. Watson, 423 U.S. 411 (1976)]
미국법의 논리는 이거다. 시민에게 불가침의 영역은 프라이버시 Right to Privacy 다. 프라이버시는 미국 헌법 상 너무나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경찰은 집과 같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피의자의 집에 들어가 피의자를 체포하려면 긴급상황이 아닌 이상 체포영장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집 밖의 모든 장소, 즉 공공장소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약화된다. 때문에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필요가 적어져서 경찰은 영장 없이도 "상당한" 의심만 있다면 그냥 체포할 수 있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미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개념이다. 그래서 영장 없는 체포의 적법-부적법을 가르는 기준은 집에서 일어난 체포인가(프라이버시를 침해했는가), 아니면 집 밖에서 일어난 체포인가(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는가)가 된다.
한번 정리해보자. 미국 법 시스템이 얼마나 체포에 관대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찰은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상당한" 정도로 의심된다면 영장도 필요 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한국 경찰은 원칙적으로 체포 영장을 먼저 받아야 한다. 체포하기 위해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 제201조 제1항 참조). 하지만 '상당한 의심' 요건은 영장 발부의 여러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 상당한 의심 + 피의자를 경찰서에 소환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나중에라도 불응할 우려 (+ 가끔 주거지가 불분명해서 지금 체포하지 않으면 나중에 피의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상황) 같은 요건이 추가로 갖춰져야 비로소 영장이 발부되고, 그 영장이 있어야만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미국 경찰이 단독 판단으로 피의자를 체포한다면, 한국 경찰은 단독 판단 + 피의자의 출석 불응/주거지 불명 + 영장판사의 판단을 통해 피의자를 체포하게 된다. 그러므로 경찰의 체포 권한은, 우리나라에서보다 미국에서 훨~~씬, 훨~~씬 넓다.
한국 경찰은 예외적으로 긴급체포의 요건(과 현행범 체포의 요건)이 갖추어졌을 때 영장이 없어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모든 체포에는 '상당한 의심'이 요건이므로, 한국 경찰도 긴급체포를 하든 현행범 체포를 하든 '상당한 의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 현행범은 현행범인 것 자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빼박 증거가 되므로 상당한 의심은 뭐 당연히 인정된다 -. 하지만 그것으로 다가 아니고 상당한 의심 + 특정 형벌 이상의 범죄 + 도망우려/증거인멸우려 + 긴급함까지 갖추어야 영장 없는 체포를 할 수 있다.
미국 경찰이 '상당히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하게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반면, 한국 경찰은 영장 없이 적법하게 체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의심도 해야 하고, 의심되는 범죄가 중죄이기도 해야 하고, 범인이 도망치거나 증거인멸을 할 만한 상황이기도 해야 하고 체포영장을 발부신청할 시간도 없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경찰이 미국 경찰보다 영장 없는 체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좁다.
미국 경찰은 원칙적으로 체포 영장을 먼저 받아야만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집은 피의자의 프라이버시가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체포 영장은, - 수사기관이 법원에 발부를 요청하면 판사가 판단 후에 발부한다 - 수사기관이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영장판사에게 충분히 보여주어야 발부된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외 요건으로, 영장판사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요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경찰력의 문제라기 보다 판사의 자격 문제이므로 생략
한국 경찰도 원칙적으로 (집 안에서 체포를 하든 집 밖에서 체포를 하든) 체포 영장이 있어야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다만 영장을 발부 받기 위해서는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 외에도 + 그 외 피의자가 경찰서 소환을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거나 불응할 우려가 있고 + 경한 죄인 경우 피의자 주거지가 불분명해서 지금 체포하지 않으면 나중에 피의자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영장판사에게 충분히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경찰은 미국 경찰에 비해 영장판사에게 증명해야 할 것이 더 많다. 요건 상 체포 영장을 발부 받기가 더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찰은 예외적으로 (i) 피의자가 도망가다가 본인 집으로 뛰어들어간 때나 (ii) 피의자가 집 안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있는 때에는, 긴급한 상황이므로 영장 없이도 집에 쳐들어가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한국 경찰은 예외적으로 영장 없이 체포를 하려면, 피의자가 도망가다가 본인 집으로 뒤어들어갔든, 피의자가 집 안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있든,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 간에 무조건 긴급체포 요건이나 현행범 체포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본인 범죄의 증거인멸은 범죄가 아니므로 증거인멸 혐의로 집에 쳐들어가 현행범 체포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긴급한 상황에서도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하려면 한국 경찰에게는 미국 경찰에게보다 장애물이 많다.
미국 경찰이 영장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집'의 범위. 주차장, 주차로, 마당을 포함한다. https://www.alec.org/article/supreme-court-rules-to-protect-curtilage-of-house-from-warrantless-searches/
(미국 중부에 살아보니 왜 집을 프라이버시의 공간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촌향도 때문인지 인구밀도가 높아서인지, 아파트가 대중적인 주거 형태라서 세대와 세대 사이가 물리적으로 가깝다. 엘레베이터 드나들면서 몇 호에 누가 사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층간소음으로 윗집이 뭘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고. 아파트 계단과 복도는 공용공간이므로 공사영역의 경계는 각 집의 현관문뿐이다. 하지만 미국 주택가에선 전형적으로 단독주택과 단독주택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밤이 되면 바깥은 깜깜하고 주민들은 집 안에만 있는다. 집과 집 사이가 멀기도 하거니와, 각 주택건물은 아예 마당과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용도로로부터도 멀다. 집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든 파티를 하든 축구를 하든, 다른 집까지 소리가 전달되지도 않고 바깥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사방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단독주택 안에서 누리는 프라이버시가, 한국 아파트에서 누리는 프라이버시보다 더 강하게 취급되는 게 아닐까?)
이상의 미국 형사소송법은 연방대법원 US Supreme Court 판례로 성립된 판례법이다. 이 법은 경찰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시민 프라이버시의 최소한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각 주(州)에서는 연방대법원 판례법을 마지노선 삼아, 나름의 성문법을 만들어서 연방대법원의 기준보다 체포 요건을 더 엄격하게 만들어 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더 강하게 보호할 수도 있고, 경찰 실무 상 작동하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 연방 기준보다 경찰력을 더 제한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도양단적으로 한국에선 이런데 미국에선 이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형사소송법 상 체포의 최하 기준과, 미국에서 통용되는 형사소송법 상 체포의 최하 기준에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 경찰의 수색권한은 어떨까? 미국 경찰은 어떤 때는 영장 없이 사유지에도 막 들어가 수색할 수 있다. 더 자세한 건 ≪미국 경찰이 무서운 이유(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