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마르고 작은 체구지만,
십오 년 넘게 택배를 하며 만들어진 생활근육 덕분에
이제는 단단한 아저씨가 되었다.
알통도 있고, 전완근도 있다.
물론 남편의 몸을 매일 관심 있게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후진할 때 핸들을 돌리는 팔,
한 손으로 커다란 박스를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면
“저건 운동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매일같이 몸으로 버틴 사람에게만 생기는 근육,
말 그대로 ‘생활근육’이다.
남편은 짐을 들고, 옮기고, 내려놓으며 그렇게 몸이 단단해졌고
나는 그 옆에서 15년 동안 도시락을 싸고,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밥상을 차려주며 살아왔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남편과 닮아 있었다.
다른 형태의 생활근육이 내 안에도 자라나고 있었다.
요즘 나는 마흔 다섯 살 이후부터 몸을 다잡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
러닝머신 대신 시장에서 배추를 들고,
덤벨 대신 생수를 들며 다져온 살림 근육에
이젠 진짜 근육을 더하는 셈이다.
운동을 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살림도 체력이 있어야 오래 간다.
팔힘이 있어야 장바구니를 들고,
하체가 단단해야 무거운 냄비를 옮긴다.
결국 근육은 삶을 버티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어느 날,
레그프레스를 하고 덤벨을 들어올리던 순간 깨달았다.
무게를 정확히 인식하며 드는 그 찰나—
남편은 매일 이 무게보다 훨씬 더한 것들을
쥐고, 나르고, 이고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그의 하루는 이런 ‘중량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남편이 손끝으로 견뎌온 무게의 가치를 실감했다.
몇백 원짜리 택배 한 상자에도,
그가 몸으로 느껴온 ‘1g의 현실’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나도 그 무게를 조금은 안다.
내 몸으로, 내 삶으로,
조금씩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짐을 들어 근육을 키우고,
나는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며 근육을 키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조금은 단단한 부부가 되었다.
참고로,
내 꿈은 ‘아줌마 마동석’이 되는 거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덤벨은 살림이고,
내 근육은 사랑이다.
오늘따라 레그프레스 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단단해졌다.
무게를 견디는 건 결국, 살아낸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