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저 도시락일 뿐인데

밥 이야기를 좀 해 볼까

by EverydayRang 글밥집

스레드에 김기사 도시락 사진 세 장을 올린 뒤로
매주 서너 장씩 그 주의 도시락을 기록처럼 올리고 있다.
도시락이 올라가면 조회수와 좋아요는 실시간으로 튀어 오르고,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시락 한 끼 앞에서
자기 삶을 술술 꺼내는 걸 보고 있으면,
참 별것 아닌 일상에도 이렇게 많은 결이 숨어 있었구나 싶어 살맛이 난다.




남편이 택배 기사라며
“반찬 아이디어 참고해야겠다”고 팔로우를 눌러주는 아내들,
30년 동안 밥해준 아내에게 이제야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던 남편,
가족들 밥 차리느라 지쳐 오늘 아침 컵라면에 밥 말아 먹고 나왔다는 남성분도 있었다.


누군가는 학창시절
도시락 때문에 학교를 즐겁게 다녔다고 했고,
어떤 이는 힘든 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보이지 않게 내조하는 나를 “대단하다”고 응원해주었다.

택배기사님들께 평소 고마움이 있었다며
도시락 사진 한 장에 울컥했다는 댓글도 있었고,
김기사님은 아내 덕분에 “어깨에 뽕 들어가겠다”며
장난스러운 농담도 이어졌다.


귀여운 참견도 빠지지 않는다.
“단백질이 부족해 보여요.”
“추운 날엔 밥이 금방 식을 텐데요.”
“보온병에 국 싸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엔 꼭 한마디.
“김기사님 든든하게 드실 수 있겠어요.”




댓글을 보다 보면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말은 ‘정성’이다.


정성(精誠) : 온전하고, 진실한 마음.

이 투박한 집밥 도시락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정성과 사랑을 읽어낼까.

나는 그저 15년째
밥하고, 도시락 싸고, 일하고, 돌아와 또 밥하고 설거지하고, 다시 빈 그릇에 밥을 채우는 일을 반복해왔을 뿐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도시락 사진 한 장을 통해
자기 삶의 한 조각을 불쑥 떠올린다.


누군가는 28년 동안 아내가 해준 밥에 대한 감사,
누군가는 어릴 적 어머니 도시락의 기억,
누군가는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을 향한 연대,

누군가는 매일의 살림 속에서 느끼는 피로와 위안,
또 누군가는 “참 따뜻하다”는 단 한 문장.


도시락은
누군가에게 사랑이고,
누군가에게 추억이고,
누군가에게 응원이었다.


도시락 사진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불러낼 줄은 몰랐다.


결국 밥 이야기는

사는 이야기이고,
먹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위해 이른 새벽 일어나고,
눈 비비고,
반찬을 만들고,
걱정하고,
밥을 싸고,

그 밥을 먹고 버티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

그 일상의 작은 반복 속에
생각보다 큰 마음이 들어 있다는 걸

댓글 하나하나가 조용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도시락은 결국
밥 이야기를 가장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김기사 도시락 메뉴는
표고버섯볶음, 황태채무침, 굴전, 렌틸콩밥, 그리고 뜨끈한 참치김치찌개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딸이 되려다, 엄마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