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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도시락과 ‘대리 돌봄’의 심리학

by EverydayRang 글밥집

나는 남편을 돌보며 사는 것인가?

김기사 도시락 이야기를 브런치와 스레드에 올리고 난 뒤, 참 신기한 일이 하나 생겼다.

“남편을 잘 돌봐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하나 둘 나타난 것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도 모르지만
추측컨대… 내 부모님 연배의 어머니·아버지들일까?
혹은 김기사와 비슷한 연배의 직업인 남성분들일지도.

문득 웃음이 났다.
‘내 아들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은 원래 시어머니께 들어야 할 말 아닌가?
그걸 내가 낯선 독자들에게 듣고 있다니.
이 또한 기묘하고 기특한 인터넷 세상이다.

“돌보다”는 무엇인가

‘돌보다’는 누군가를 관심과 정성으로 챙기고 보살피는 행위를 말한다.
아기나 노인을 돌본다는 문장처럼,
대상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남편을 돌보며 사는 것인가?
아니, 여기서 잠깐.
내가 남편을 ‘아기’ 취급하는 건가?

생각해 보니 좀 우습다. ㅎㅎ
(하긴… 김기사 55세.
집에서는 먹고 자고만 하는 신생아 되시겠다.
기저귀만 안 갈아줄 뿐이지, 거의 영아반 케어 수준이라고 ㅎㅎㅎ)

하지만 어쩌면
착한 타인들은 나의 도시락 챙김에서 대리 돌봄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내 손끝에서 남편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아들, 배우자, 혹은 예전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감정의 빈칸을 채우고 있는지도.


1. 대리 돌봄의 힘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대리 강화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나에게도 마치 보상이 온 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현상이다.

나는 도시락을 싸고 시를 배달했을 뿐인데,
그걸 본 누군가는
“아, 저렇게 챙기는 마음… 참 좋다.”
하고 스스로 강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내가 아니라, 자신 안의 돌봄 욕구가 충족되어 고마운 것이다.


2. 엘리베이션이라는 마음의 움직임

타인의 선한 행동을 보면
가슴 한쪽이 조용히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엘리베이션이라고 부른다.

도시락 하나, 시 한 편이지만
그걸 매일 건네는 마음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세상 아직 살 만하다”는 고양감을 느낀다.

그 따뜻함의 출처를 나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은 세상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3. 우리는 생각보다 더 깊게 연결된 존재

흥미롭게도 사회학에서는,
사람들이 익명의 타인에게도 강하게 이입하고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다고 말한다.

김기사 도시락을 보던
어떤 어머니뻘 독자는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아이고, 저 며느리 참 고맙다”라고 느낄 수 있다.

어떤 남성 독자는
자신이 받고 싶은 배려와 돌봄을
내 행동에 투사하며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즉,
우리는 서로의 삶을 관찰하며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작은 치유를 경험한다.

김기사 도시락은
내 일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도 작은 풍경이 된다.


결론

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고,
시는 마음속으로 배달한다.

독자들은 그 장면을 보며
자신의 사랑, 가족, 과거, 결핍, 소망을 투사한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우리는 모두 서로의 삶을 조금씩 돌보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요즘 나는 매일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

아기나 노인을 돌보듯이,
나는 남편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본 착한 타인들은
나에게 대리 감사를 보내고 있었다.

돌봄은 이렇게 확장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을 견고하게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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