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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도로 위의 긴긴밤, 식어간 고봉밥

by EverydayRang 글밥집

지난밤 눈이 내린 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0미터 거리를 2시간 기어가고,

평소 같으면 10분이면 들어갈 사무실을 끝내 못 들어가

택배기사 남편 김기사는 밤새 도로 위에 갇혔다.


서울 배송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던 길,

밤 8시 40분부터 트럭은 움직이지 않았고

눈은 멈출 줄 모르고 쏟아졌다.

결국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동료들과 사무실이나 근처 모텔에서 자야 할 수도 있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간 밤, 무사한지 걱정돼

아침 눈 뜨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말은 이랬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정체가 풀려

그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는 이야기.


평소 같으면 10분, 길어도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에서

9시간 가까운 밤을

눈 쌓인 도로 위 트럭 운전석에서 버틴 셈이다.

어젯밤 남편 저녁상으로 차려놨던

고봉밥은 차디차게 식어 있었다.

저녁 메뉴는 오리고기구이와 김치찌개였다.

라디오 외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을

그 긴 겨울밤의 트럭 안에서

김기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사는 게 왜 이렇게 고단한가,

저녁도 못 먹고 배는 고팠을 텐데,

마누라가 오늘 밥상엔 뭘 차려놨을까,

반주 한 잔이 아쉽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이러고 오도 가도 못 하는데

마누라랑 딸내미, 호두는

집에서 잘도 자고 있을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도 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지겹다, 지겹다

그 말만 되뇌었을까.


혼자 그런 생각들에 잠겨 있지는 않았을까.


남편이 이런 겨울밤을

도로 위 트럭에서 보냈다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자꾸 저며 온다.


그래서

간 밤에 내가 따뜻한 집에서 편히 잔 게

괜히 미안해

내가 퇴근하면 배송 도우러 가겠다고 하니

김기사는 극구 됐다고 한다.


타인의 고됨과

타인의 그림자가 다 보이는 건

사실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본인만큼 힘들까.


사는 건, 참 고되다.


그래서 오늘 저녁,

나는 집에서

동태탕이나 끓여 놓고

뜨끈한 밥상이나 차려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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