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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흐르는 물과 화살 같은 인생

폐암 말기 아버지가 목이 메어 이야기한 ‘최고의 한’

by EverydayRang 글밥집

아버지와의 심층 면담은 이제 세 번째, 마지막 공식 질문을 나누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평생을 걸쳐 품어온 삶의 철학과 깨달음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본인의 삶을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은유법으로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아버지는 하루 전날 정성껏 손 글씨로 적어 놓은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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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유수(흐르는 물)와도 같은 것’이며, ‘화살 같은 바로 그 자체’였다고 정의하셨습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궤적을 돌아보시면서, 이젠 그 종착지 앞에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돌아 보건데, 별것도 아닌 그 인생,
삶을 그렇게 아등바등 대며 앞만 보고
살아온 그 자체는 무엇이며,
그 종착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무엇을 향해,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왔던가!"

‘화살’처럼 목적지를 향해 달려왔지만, 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잊은 채 달려온 인생. 그 모든 고뇌 끝에,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후회와 부끄럼 없이 살라는 뼈아픈 유언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가 치열했던 일생을 선명하게 보여준 각 시기의 은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동기는 生(생)으로 은유되었습니다. 넉넉지 않아도 부모님의 넉넉한 사랑 속에서 자란 시기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엄마를 위해 부엌 설거지를 도맡아 했던 막내 소년, 시냇물이 불면 기다리는 아들을 데리러 왔던 어머니의 모습이 핵심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청년기는 勞, 喜(노여움과 기쁨)가 교차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포기라는 노여움과 함께 상경 후 농협 공채 수석 합격이라는 기쁨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30리가 넘는 산길 통학, 집안일과 학업 병행의 치열함 끝에, 농협 수석 합격 소식으로 시골 아버지가 돼지 잡으며 기뻐하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중년기는 哀, 樂(슬픔과 즐거움)으로 압축됩니다. 화이트칼라의 풍요를 누렸으나 처형의 부동산 문제에 개입하면서 불명예 퇴직을 겪었고, 이는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습니다. 농협에서 근무하던 시절, 현금 시재 10원 때문에 퇴근 못할 때 빨리 돌아오라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남아있는 이 시기는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했습니다.


마지막 노년기는 病, 死(병과 죽음)로 정의됩니다. 평생 건강을 자신했지만 찾아온 가혹한 시련 앞에서 "왜 인간에게 행복만 주시지 불행을 주셨을까"라는 신을 향한 원망과 순응을 함께 보여주셨습니다.






운명을 가른 ‘과욕’과 ‘최고의 한’


아버지의 중년기가 슬픔과 즐거움(哀, 樂)으로 표현된 것은, 그 시기에 겪었던 '첫 번째 인생 시련기' 때문이었습니다. 농협에 수석으로 입사하여 풍족했던 시절을 보냈지만, 처형의 부동산 문제에 개입하면서 불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그 욕심만 안 부렸다면
농협에서 명예퇴직하고
연금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처형을 돕기 위해 떠안았던 그 막중한 책임을 ‘과욕(過慾)’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남이 나를 믿고 맡긴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을지라도, 결국 그것이 본인의 인생을 덮쳐버린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욕으로 인해 연금을 포기하고, 그 이후 세상의 야박한 인심까지 경험하며 평생의 ‘한’을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삼남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유산’은 무엇이며, 아버지가 목이 메어 이야기하신 ‘최고의 한’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의 세 가지 유산

정신적 유산: 맡은 바 책임 다하기, 욕심 부리지 않기,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삶 살기. 형제들 간에 우애 있게 지내기.


신앙적 유산: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올바르게 성장하여, 부끄럼 없는 떳떳한 자녀로 살아가기.


물적 유산: “해주고 싶은 것 다해주지 못해 평생 한이 되어 버린 그것.”


이 세 번째 유산에 대해 말씀하실 때, 아버지는 가장 크게 울먹이셨습니다. 당신이 꿈꾸는 그 무엇을 끝내 물려주지 못할까 봐 죽지도 못할 것 같다는 고백. 물적인 아쉬움 속에는, 자녀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후회되는 것을 여쭈었을 때, 아버지는 다시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후회되는 것은 정말 너희들하고
좋은 추억도 많이 못 만들고…
(중략)…
특히 랑이 너한테 짐만 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가장 후회하고, 가장 가슴에 한이 맺혔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삼남매한테 해준 게 없다는 것이 최고의 한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의 삶은 분명 최선을 다한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짐’이나 ‘부족함’으로 여기고 계셨습니다. 후회 없는 떳떳한 삶이란,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식들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지 못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순수했던 시골 소년에서, 가혹한 시련을 겪은 중년, 그리고 이제 병과 죽음을 앞둔 노년의 아버지에게 삶은 여전히 무거운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짐을 지고서라도 자녀들에게 '욕심 부리지 말라'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사랑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가장 풍족하고 귀한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에필로그: 남겨진 질문과 되살아난 삶


아버지와의 모든 면담을 마치고, 저는 기록된 아버지의 생애사 속에서 제가 몰랐던 아버지의 시선과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면담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대상으로 아동가족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장녀인 제가 아버지를 간호하며 진행한 탐구의 여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연구 주제가 된다는 사실에 호기심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면담은 2019년 10월부터 11월까지 3차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투병 중인 처지를 한탄하고 슬퍼하시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인식하고 갈등 관계에 있던 가족 및 형제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고 이야기했던 연구 초반과 달리, 면담을 지속하면서는 당신의 이야기가 연구자인 딸과 가족들에게 ‘보람있는’ 인생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삶 전체를 돌아보고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며
“덜 욕심부리고 양보했으면 됐을 것을,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라고 회고했던 아버지는, 죽음을 수용하면서도 남은 시간을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으로 인식하셨습니다.


2019년 11월 22일 이후 4차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버지의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어 2020년 2월 11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묻고 싶었던 몇 개의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아버지는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주고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생애이야기는 한 남자로서,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의미 있게 되살리는 작업이었습니다. Atkinson(2011)은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수록 우리는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이 특별한 여정은 연구자인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한층 더 깊고 가깝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는 내게 큰 유산으로 남아 내 삶 속에서 다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장례.PNG 아버지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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