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유, 윤하가 되다.
딸의 무대 도전기
- "엄마, 나 학교 '꿈끼발표회' 때 노래 부르기로 했어"
하굣길에 예쁜 검정 길냥이를 봤던 이야기를 하듯 살짝 설렌듯한 딸의 목소리.
내심 크게 놀랐지만 그 순간 나는 애써 침착해야 했다. 이 타이밍에 호들갑을 떠는 순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일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엄청난 일이 돼 버리고 아이는 괜히 손들었다는 후회와 무대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 뭐 부를 건데?"
-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내 참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나의 입은 속내를 내뱉고야 말았다.
-"뭐? 사건의 지평선? 그 노래 엄청 높잖아!!"
아차차, 아이를 쳐다보니 이미 김샌 표정이다.
이런 부족한 엄마 같으니, 이제 수습에 매진할 차례다!
- "와, 그 노래 진짜 어려운데 대단하다.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진짜 못하겠던데!
노래 많이 들으면서 연습하자. 반주는 틀어준대? 마이크도 있어? 옷은 뭐 입을 거야?"
그날부터 우리 집에서는 수시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흘러나왔다. 남편과 내가 슬그머니 틀어놓기 시작한 거다.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가사를 10살짜리 아이가 알고 부르는 지, 가사는 제대로 외울지, 현란하게 넘나드는 고음은 또 어쩐담. 집에서 아이유 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준일 뿐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괜찮을까? 무사히 완창하고 내려올 수 있겠지? 이런저런 걱정과 함께 무대 위 아이를 상상하다가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로 끝을 냈다.
노래에 특별히 재능이 있지도, 무대를 즐기는 핵인싸도 아니지만 아이를 움직인 동력은 초등학교 3년간 키운 '용기'와 '자신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에도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드디어, 당일!
하루 종일 하굣길 딸의 전화를 기다렸다
- "엄마! 대박이야.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은 날이야"
3학년 전체 순서 중 마지막 무대에 올랐는데 친구들이 노래에 맞춰서 손을 흔들어 줬고 박수를 크게 쳐줬고 행사 후 교장선생님께서 무대에 오른 어린이들이 모두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시며 마지막에 노래한 친구는 미래의 아이유가 될 거라는 어마어마한 덕담을 해주셨단다.
신난 아이의 몸짓과 표정이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 "엄마, 나는 오늘도 이렇게 자랐어요. 너무 멋진 경험이었어요.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아요.
무대에 서는 게 떨렸지만 짜릿했어요"
'우리 집 아이유'가 세상 밖으로 작은 걸음을 내디딘 2022년 12월 27일.
미래에 훌쩍 자란 아이는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기억을 씨앗 삼아 어떤 꽃과 잎을 피워낼까?
아이의 찬란한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다니, 참 영광스러운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