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등 돌리고 누운 재정 부부. 둘 다 잠 못 들고 이리저리 뒤척인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않는 혜경.
혜경/
아니! 어머님은 어쩌자고 갑자기 저러시는 거야. 내가 미치겠어 정말.
재정/
당신이 뭐 섭섭하게 한 거 아니고? 요 며칠 늦어서 저녁 설거지까지 엄마 시키고 그랬잖아.
아까도 그래. 반찬 이야기는 왜 꺼내가지고.
혜경/
또 내 탓이야? 내 엄마야? 월급의 반은 어머님 드리지. 거기에 생활비 따로 드려.
철마다 옷 사드리지. 주말은 쉬시라고 친정 가 있는데. 뭐가 부족한 거야 도대체.
재정/
내가 내일 천천히 엄마랑 이야기해볼게. 우울증 그런 건가 보지 뭐. 살살 달래면 마음 풀리실 거야.
일단 자자. 피곤해.
혜경/
난 몰라. 알아서 해결해.
신경질적으로 이불 뒤집어쓰며 눕는 혜경.
젊은 엄마, 할머니 등이 떠나는 유치원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왕골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정순과 미자도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든다.
정순/
말했어?
미자/
했지.
정순/
반응은?
미자/
바짓가랑이 잡지.
정순/
단단히 마음먹어. 이따 만나. 늦지 말고!
옆에서 대화를 들은 할머니가 힐끔 쳐다본다.
건강식품 회사. 사무실 한편에 건강식품이 박스째 쌓여있고 벽면엔
판매 목표가 적힌 현수막이 벽에 걸려 있다.
사무실을 쭉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는 부장, 재정 뒤에서 발걸음을 딱 멈춘다.
부장/
박대리! 섭외리스트 말입니다. 슬쩍 봤는데 뻔한 인물들만 줄줄이네요.
(직원들 향해) 한 발 앞서가도 모자랄 판에 두 발짝씩 느리면 곤란합니다.
신선하고 새로운 인물을 찾으세요. 우리가 처음이어야 합니다.
재정/
저, 부장님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어필하려면 아무래도 유명한 사람이어야..
부장
/박대리, 올해 몇 년차죠?
소비자 입맛 따지기 전에 오너 입맛을 먼저 사로잡아하는 거 아직도 몰라요?
상사 말 들으면 적어도 손해 안 봅니다.
부장은 자리를 뜨고. 재정은 눈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한다.
난간에 나란히 선 재정과 동기, 재정은 주머니에서 약 꺼내 입에 털어 넣는다.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재정에게 건네는 동기.
동기/
또 위염?
재정/
이놈의 회사 관두던가 해야지.
동기/
사무실 꼰대야 뭐, 어딜 가도 있어.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모르냐?
재정/(피식)
동기/
나도 한 알 줘봐.
재정/
넌 왜?
동기/
우리 와이프 회사 관뒀다. 육아휴직 연장하러 회사 갔다가 이별통보받고 들어왔어
애가 어리니까 엄마가 돌봐주는 게 좋긴 한대..
(울상) 나 혼자 그 많은 대출을 어떻게 갚냐고요.
재정이 약 한 알 건네고 입에 털어 넣는 동기. 남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동기/
에혀, 말한다고 네가 집 없는 소시민의 애환을 알겠냐. 집 있겠다 차 있겠다,
든든한 처갓집에 능력 있는 와이프. 다 가졌어요 다.
재정/
모르는 소리 좀 그만할래? 어제 우리 엄마 파업선언하셨어.
동기/
갑자기 왜? 어디 안 좋으셔?
재정/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동기/
어머님 그동안 할 만큼 하셨지 뭘. 도우미 구하면 될 거 아냐.
재정/
우리 집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걸? 유민이가 워낙 별나야 말이지.
도우미들 다 한 달 만에 관뒀잖아. 엄마 잘 달래 봐야지 뭐.
생수 벌컥벌컥 마시는 재정.
카메라 앞에 선 실버모델들(정순, 미자 포함), 감독 큐 사인에 맞춰 성인 기저귀 착용감과 핏을 부각하는 연기 시작(엉덩이 씰룩대고, 만지고, 앉았다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정순. 가장 잘한다.
PD/
컷! 좋습니다.
(정순을 가리키며) 여기 가운데 어머님, 많이 해보셨나 봐요
단독 컷 한번 가실게요. 다른 분들은 잠시 나와 주세요.
쑥스러운 듯 카메라 앞에 홀로 선 정순, 카메라 밖 명수와 눈이 마주친다.
명수 엄지 척! 내밀고 정순은 슬며시 미소 짓고 연기 시작.
미자, 미자 손녀 서연, 유민은 명수와 정순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 중인 정순.
카메라 밖에 서 있던 유민이 슬슬 짜증 내며 보채기 시작한다.
연기하면서 곁눈질로 유민을 살피는 정순, 불안한 표정으로 연기 이어가고.
PD/
컷! 수고하셨습니다.
유민/
할머니~
유민이 정순을 향해 뛰어오다 촬영장비에 걸려 넘어진다.
으앙 울음이 터지고 이마에서 피가 맺힌다.
정순 /
유민아!
이마에 반창고 붙인 유민의 손을 잡고 병원 문 나서는 정순.
정순/
에구. 우리 강아지, 요 계란흰자 같은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어떡해.
명수가 뛰어와 정순의 손가방을 건넨다.
정순/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서 어떡해. 바쁠 텐데..
명수/
누님도 많이 놀라셨죠? 손자는 어때요?
정순 /
흉터가 좀 남을지도 모른대.
명수/
(유민 보며) 요 녀석. 그래도 씩씩하네! 할머니 닮아서 얼굴도 훤칠하고.
그나저나 누님은 그대로시네요. 세월이 누님만 비껴갔나 봐요
정순/
(발그레)아유, 무슨..
명수/
당장 이쪽일 하셔도 되겠어요. 조만간 차 한 잔 해요. 다시 가봐야 해서.
정순/
그래, 어서 가. 나중에 봐.
한참 동안 명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순. 정순을 올려다보는 유민.
유민/
할머니. 초록불.
정순/
어, 가자!
유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정순 뒷모습, 모델처럼 엉덩이를 씰룩대며 워킹해 횡단보도를 건넌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