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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아리 Apr 05. 2020

우리 집 백배 즐기기

-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의 수많은 단점 속 빛나는 장점이 하나 있다.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날아간 화살을 쳐다보고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결과에 미련을 잘 두지 않는 편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머물면서 늘어나는 확진자수에 절망하고 그들의 동선을 보며 화를 냈다가 이내 불안감에 휩싸이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누군가 그랬다. 요즘 같은 때는 건간 관리도 중요하고 동선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멘탈 관리도 해야 한다.    

 

재택근무와 출근을 번갈아 하는 남편과 입학연기된 아이, 그리고 휴직자인 내가 하루 종일 석 달째 집에서 지내면서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코로나 맞춤 집콕 라이프 스타일’이 생겼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고일어나는 것과 운동이다.    


요즘 나는 6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곧바로 실내 자전거를 탄다. 45분 동안 인터벌로 타고나면 땀이 송글 송글 맺히고 창밖은 환해져 있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 우려서 노트북 앞에 앉는다. 하루 중에 나 혼자 깨어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하루 중에서 시간이 제일 빨리 흐른다.     


8시에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아이는 EBS 특강을 시청한다. 그동안 나는 다시 운동을 한다. 요즘 유튜브 보면서 운동 따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살천지, 확찐자, (옷이)작아격리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시작한 운동인데 이제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다양한 홈트 영상을 골라서 따라 하다 보니 불쑥 찾아오는 우울감, 불안감도 많이 줄었고 아주 조금씩 줄어드는 체중계 숫자와 뱃살을 보며 소소한 행복을 얻는다.     


운동이 끝나면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다. 두 달 넘게 삼시 세 끼를 차리다 보니 이제는 냉장고 안 사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버리는 식재료 없이 주방 운영을 잘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수제 그릭 요구르트, 파김치 등 회사 다닐 때는 힘들고 귀찮다는 핑계로 안 해본 것들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점심 이후부터 본격 아이와의 시간이 시작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도서관 폐쇄 이후 책을 못 빌리니 중고나라 드나들며 싼 값에 책을 구입하고 한 번씩 찾아오는 무료함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위해 종이접기, 과학놀이, 미술 도구, 쿠키 만들기 믹스 등 온갖 놀이 재료를 주문해 장비 빨로 아이와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거 참, 돈 많이 든다. 그래도 봄철 나들이 다니며 썼을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부터는 아이에게 간단한 집안일도 가르치고 있다. 밥솥에서 밥 푸기, 전자레인지로 음식 데우기,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접시에 덜기 등 말이다. 나중에 아이 집에 혼자 있을 때 스스로 밥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연습을 시키는 차원인데 8살이 되니 뭐든지 곧잘 배운다.


매주 주말 저녁은 온 가족 영화 감상 시간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프로그램이 많이 없다 보니 평소에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데 주말에 주전부리와 함께 가족영화 한편씩 보면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 된다.


딸은 요즘 두 발 자전거 타기에 도전 중이다.

지난주부터 매일 늦은 오후에 아파트 앞 공터에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정확하게 7일째던 어제, 스스로 타고 달리는 데 성공했다. 친구를 만나서 놀고 싶고 나들이도 가고 싶을 텐데 상황을 이해하고 이 안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나의 꼬마 집콕 메이트가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


집 앞 산책로에 벚꽃이 만개하면서 늘어나는 벚꽃송이만큼이나 산책로를 찾는 사람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 많은 사람들 속 하나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눈으로만 꽃구경 중인데 아니나 다를까, 구청에서 산책로를 아예 폐쇄해버렸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딸이 말했다.    


- “엄마, 내일은 그림 그리기 할 거야.”  


- “어떤 거 그릴 거야?”    


- “우리 집에서 보이는 풍경 그릴 거야”    


그래, 딸의 도화지 속에 벚꽃이 만개할 테니 나는 딸의 그림으로 올봄 꽃놀이를 즐겨야겠다. 때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알아보고 예약하고 찾아가는 수고를 반복했는데 올 해는 그것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하지 않는 편안한 행복을 마음껏 누릴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 우리 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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