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Nov 10. 2019

이동세탁차량은 오늘도 달린다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18호 태풍 '미탁'이 지나갔다. 사망자 15명, 부상자 11명, 이재민 1,541 세대 2,520명 (행안부 일일상황관리, 10.10. 기준)이 발생했다. 잔인한 태풍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대한적십자사는 피해 입은 이재민들을 위해 긴급 재난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적십자사에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오토봇 리더인 옵티머스 프라임(?)을 닮은 특수차량이 각 지사별로 두 대씩은 있다. 전국 14개 시도 지사이니 30대는 족히 된다. 한 대는 1시간에 500여 명의 밥과 국을 만들 수 있는 이동급식차량이고, 또 한 대는 세탁기 7대 내외가 장착된 이동세탁차량이다. 5톤짜리 특장차라 제법 웅장함을 자랑한다. 재난현장에서 두 차의 역할은 크다. 이중 오늘은 이동세탁차량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번 재난기간에도 강원 삼척과 강릉, 경북 울진으로 이동세탁차량 4대가 출동했다. 65가구 3,743kg의 세탁물을 빨래했다. 재난이 나게 되면, 특히 수해가 나서 집안이 물에 잠기면 흙탕물에 젖은 옷과 이불을 세탁해야 한다. 흙탕물에 젖은 옷과 침구류를 빨리 빨지 않으면 곰팡이와 악취로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시 젖은 옷이나 이불가지를 신속하게 빨기 위해 만든 차량이 이동세탁차량이다. 아주 좋은 차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지구를 지키고, 이동세탁차량은 이재민의 빨래를 지킨다.


재난이 없다고 해서 이 차가 주차장에서 한없이 쉬는 건 아니다. 평상시에는 각 지역 적십자봉사회와 연계해 노인 부락이나 복지시설을 돌면서 빨래를 한다. 세탁차 안에는 세탁기가 여러 대 장착되어 있지만 묵은 때를 팍팍 벗기기 위해서 빨간 고무 다라이(?)를 놓고 세제를 풀어 발로 밟기도 한다. 재난현장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대개는 흙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에 빨간 다라이(?)에 물을 받아 발로 밟고 세탁차량에서 탈수를 한 뒤 이재민들에게 되돌려 드린다. 



그런데 폭우가 내리고 난 다음 며칠간의 날씨를 떠올려 보게 된다. 폭우가 내린 뒤에는 비가 연이어 내리거나, 날씨가 흐리거나, 습도가 높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해가 뜨면 다행이다. 적십자 봉사원들이 최대한 서둘러 세탁물을 빨래해서 드리면 이재민들은 바닥에 천을 깔아 말리거나, 다리 난간에 걸쳐 말리거나, 빨랫줄을 임시로 쳐서 옷을 말릴 것이다.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은 달라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슷해 보인다. 내가 다녔던 2006년 태풍 에위니아 때도, 2011년 동두천 보산동 폭우 복구활동 때도, 2017년 충남북 수해피해 때도 비슷해 보인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수해상황이 생긴다면 이런 모습은 재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의류건조기가 장착된 세탁건조 특장차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건조기는 빠른 속도로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세탁물을 건조나 반건조 상태로 만들어주게 된다면 이재민이 해야 할 일과 고통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기존 세탁차량과의 새로운 조합도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차량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문제다. 차량을 만들었는데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특장차를 만들어놓고 쓰지 않는다는 지적도 분명 뒤따를 수 있다.


미래는 현재보다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시스템도 장비도 시대에 따라 현대화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재난구호활동이 어떤 모습이 될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