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늘은 뭐하고 보냈어?"라고 제일 먼저 물어본다. 어떤 날은 대답을 잘 해주는데, 어떤 날은 새초롬하니 대답을 잘 안 해 줘서 궁금증이 그대로 남기도 한다. 그럴 적엔 유치원 선생님이 써 주는 알림장을 책가방에서 꺼내 읽어보곤 한다.
그런데 가방 속에는 알림장 외에 소책자가 한 권 더 있다. 독서통장이다. 독후일기라고도 하는데, 책을 읽고 난 느낌이나 생각을 그림이나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기장이다. 아이는 아직 온전하게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하기 때문에(요즘 한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로 엄마 아빠가 곁에서 책을 읽어주면 본인이 그림으로 표현을 한다.
그렇게 주중 독후일기를 하다 보니 올해 벌써 2권째 쓰고 있다. 유치원에서는 독후일기를 열심히 한 아이들에게 <늘품 책사랑상>을 주고 있다. 우리 아이는 작년에도 올해 상반기에도 이 상을 받았다. 아이들 중 절반이 이 상을 타지만, 책과 관련한 상을 타서 흐뭇하다. 독후일기를 매일 하면서 표현력도 풍성해지고, 특징을 잘 잡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는 퇴근하고 작은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거실에 있던 아내가 나를 호출했다.
"여보. 여보. 이리로 좀 와 봐."
"뭔 일인데?"
"오늘 이걸 만들었대. 잘 만들었지?"
아이 가방을 열어보던 아내가 가방에서 A4용지를 접어 만든 그림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애완동물이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에게 A4용지를 접어 속지 만드는 법을 배웠나 보다. 선생님이 첫 페이지에 제목을 적어 주제를 줬고 아이는 토끼, 개, 다람쥐 등 동물을 그렸다. 근사했다. 동물들의 표정이 살아 있어서 좋았다.
작품명1. 애완동물
며칠 뒤에는 두 번째 그림책이 가방에 들어 있었다. 제목은 물고기였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Good night, Little Rainbow Fish>를 한때 많이 읽어주었는데 그걸 떠올리며 그린 것 같았다.
작품명2. 물고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림책 <신비아파트>가 완성됐다. <신비아파트>는 어린아이들 또래에서 굉장히 핫한 만화라고 하던데. 초등학생부터 보는 만화였고, 정작 아이는 무서워해서 집에서 한 번도 틀어준 적이 없는 만화였다. 그런데 어디서 참고를 했는지 귀신, 요괴들을 매 장마다 각기 다르게 그렸다.
작품명3. 신비아파트
아이가 만든 3권의 그림책을 보면서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다시금 느낀다. 아이도 크면서 그런 즐거움을 알아가면 좋겠다. 그것이 글이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꾸준히 만들어 나가면 나름 의미가 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벌써 이렇게 3권의 그림책을 만들다니..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인 아빠보다 훨씬 낫네.
아무튼 아빠의 권능으로 이 그림책 세 권 모두를 우리 집 가보로 남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