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생각하고 고민하면 열받는데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그냥 덮어놓고 지나간 문제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설교"에 대한 문제이다.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누가 갖고 있는가 처음으로 고민 했던 때가 언제 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북경 유학 생활 때, KOSTA라고, 유학생 수련회가 있었다.
스탭으로 섬기던 시기였는데, 스탭 모임의 설교자를 물색하고 컨택하는 과정에서, 회장단이었던 친구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했을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당황한 내 모습이 분명 티가 났을 것이다) 목사님도 아니고 교역자도 아니고 백번 양보해서 신학생도 아닌데 어떻게 설교를 하려고 하는지, 말도 안된다 생각 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지상 명령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라는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한 가지 방법이 "설교"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목사 안수를 받은 남자"로 축소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 해 본다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정의 내리는 범위는 교단마다 다르긴 하다).
물론,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또는 여러가지 등등등의 이유로 "가르치고 지키게" 하기 위한 "설교"를 말씀을 제대로 묵상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남용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되겠지만, 과연 지금 우리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설교자"로 "세우는" 사람의 기준이 "성경적"인가 라는 고민은 끊임 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일 하면서, 학교 예배 시간에 "목사" 또는 "전도사"가 아닌 그냥 "선생님"도 설교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학생들과 일상을 살아가는 선생님이야 말로, 가장 좋은 "설교자"가 아닌지 자랑스럽고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설교를 하는 "선생님"이 "남자"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여자 선생님들은 "간증"은 할 수 있겠으나 "설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여자"로서 차별을 받는 것이 기분 나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리스도가 자유케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여전히 불평등과 불의 가운데 있는 많은 한국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통함일까. (물론 우리 학교는 이런 일부 사건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남녀를 차별하여 대하는 것이 적은 건강한 공동체 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30여년 모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여성을, 또는 그 누군가를 억압해 온 우리의 여러 모습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이번 "간증 & 설교" 사건으로 내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과 불편함을 해결 할 수 있을까, 다시 그냥 덮어놓고 사는 것이 속 편하지 않을까 고민 중에 접하게 된 책.
하늘이음 4기 모임 첫 책으로 선정된 책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이다.
김세윤 교수님 책이었는데, 김 교수님 책은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구원이란 무엇인가>> 등등 으로 접해 본 적이 있어서 많이 반가웠다.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과 새 창조의 질서 속에는 불평등과 불의를 가져오는 이 세상의 모든 차별이 해소되었 습니다. 58p ]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선포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권과 시대가 갖고 있는 각각의 불평등과 불의가 드러나고, 해소된다. 한국 교회가, 유교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가 아직 여전히 갖고 있는 불평등과 불의가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불과 135p가 채 되지 않는 작고 얇은 이 책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불의에 대하여 예수님의 관점과 바울의 관점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여성은 차별 받고 있다.
물론, 나는 여성을 모두 "피해자"로 인식하고 남성을 "가해자"로 정의내리는 극단적인 일부의 주장을 반대하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자유에 역행하는 상황들이 한국 교회 공동체 안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남성" 신학자이신 김세윤 교수님이 낱낱히 파헤쳐 까발리시고 문제 제기를 해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통쾌하고, 이 책을 독서 모임 첫번째 책으로 골라 주신 "남성"이신 독서모임 인도자님의 의중도 너무 궁금해졌다.
성경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분명,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선포된 말씀은,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께서 새로이 세우신 새 창조 질서를 따른 바울이 선포한 복음은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상전도 없고 노예도 없다, 다 하나다(29p)"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여성이 "설교"를 하는 것도 이러한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복음"에 기초해야 하며,
가정에서의 부부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복음"이 빠져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바울은 남녀 구분 없이 함께 같은 방에서 예배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부터가 놀라운 일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뿐아니라 공예배에서 여자들도 대표기도를 하고 예언도 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약시대의 예언이란 주로 성령의 영감에 호소하며 성경을 해석하면서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인데 요즘 말로 하면 설교 입니다. 79p]
[이 본문의 진정한 기독교적 특성은 바로 이것입니다. 약자인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정통적인 요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인 남편에게 아내를 자아 희생의 정신으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일반 세상 윤리와 다른 기독교 윤리의 특성이 여기 나타난 것입니다. 94p]
창조 때 부터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으며,
인간의 타락으로 이러한 인간의 남녀 동등성이 망가졌으나,
예수님께서는 당시 물건 취급을 당하던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에 대해 새로운 가르침을 선포하셨으며, 당시 증언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되지 않던 여성들에게 가장 처음으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여성을 복음의 첫 선포자로 삼으셨다.
바울 역시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하면서, 기독교 사회 윤리의 기본 원칙을 나타내었고, 피차 사랑하고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책을 읽을 수록,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과 멀기만 한 현실 가운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여성 해방"이라는 것에 포커스만 맞추다 보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막막하고 화가나지만.
예수님의 행적과 바울의 행적을 다시 따라가다 보면, 소망이 보인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있어서는 남녀 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다 본질적인 구원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본질적인 메시지가 신뢰를 얻고 설득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문화적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9p]
[바울은 교회가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누구에게나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모든 것을 질서있게 해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흠 잡히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초대교회 바울의 선교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모릅니다 86p]
예수님은 단순히 "여성" 또는 "이방인"으로 대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착취 하는 모든 구조를 "적"으로 돌려 싸우러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인해 일어난 많은 회복들의 결과로 불평등 가운데 억압 받고 있는 자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 역시 창조의 원래 모습대로 회복되어지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구원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게 허락 하신 방법으로 그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되, 다양한 방법으로 거짓 보수주의의 왜곡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여성 해방"이 먼저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2021년 여름, 여성 설교자를 세우지 않는 공동체의 현실에 분노할 뻔 했던 내가 이 책을 일고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