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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21. 2021

우리 집에는 (잘생긴)당근맨이 산다

신랑이 생각하는, 내가 결혼을 잘한 이유

"결혼 잘했네. 이런 신랑이 어딨냐."

이 소리는,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랑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 당근마켓에서 내 자전거를 사온 후  한 말이다. 그럼 난 이렇게 화답한다.

"암, 잘했고 말고. 아주 잘했어. 당근맨!"


 나는 당근마켓을 사랑한다. 당근마켓 이전에는 중고나라와 맘 카페에서 중고 물건 사고팔기가 내 취미였다. 첫째가 나오던 날 새벽, 아파서 잠을 못 이루던 때에도 중고나라에서 젖병소독기를 구입하느라 진통마저 잊었던 나였다. 여기, 현재에 집중하기에는 중고거래만 한 게 없다.

 

<로또같은 우리사이, 갈등은 일상이다>

 신랑과 나는 로또 같은 사이다. 안 맞아도 그렇게 안 맞을 수 없다. 외모부터 시작하면 신랑은 키가 엄청 크고, 그 옆에 서면 나는 매우 작다(실제로는 평균임을 강조한다.) 신랑은 이제 과체중이며 나는 여전히 저체중이다. 식성은 생선과 채소를 좋아하는 신랑에 비해, 나는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며 고기가 진리이고 채소는 거들 뿐이라고 외친다. 거기에 '사고형'에 논리적인 신랑은 문제 해결에 최적화되어있지만, 나는 '감정형'에 갈등 회피형으로 '둥글게 둥글게'가 인생 모토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신랑과 마디가 넘어가는 대화를 하면, 신랑은 문제를 일으키고 나는 갈등을 만들어 불처럼 타오른다. 그래서 언제나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런 신랑과 내가 쿵작이 척척 맞는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중고거래이다. 우리의 첫 거래는 신랑이 자취할 때 쓰던 침대를 판 것으로 시작으로, 용달을 불러서 사 왔던 리클라이너, 서울에서 수원까지 운전해서 데려온 아기 식탁의자까지... 우선 물건을 산다고 하면 중고 시세부터 알아보는 게 습관이다. 그리고 그 물건의 배송 전담에는 신랑이 있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카톡으로 날짜와 시간, 금액, 사야 할 물품 사진과 확인해야 할 사항을 간단히 보낸다. 그러면 출동해서 사 온다. 가끔 '이게 꼭 필요한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얼마 전 내 e북 리더기를 샀을 때다. 그리고 여전히 그거 다시 팔라고 종용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묻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쿠팡을 '쿠팡맨'의 '로켓 배송'때문에 이용한다면, 당근 마켓은 우리 집 '당근맨'의 '타조 배송'때문에 애용한다.(로켓 배송, 치타 배송처럼 빠르진 않지만, 키 크고 새 중에는 빠른 편인 '타조 배송' 정도가 적당하겠다.)

 

 이번에 사 온 자전거의 경우 우리 당근맨의 구력이 더욱 잘 드러난다. 물품을 설명하려는 판매자에게 쿨하게 돈부터 드리고는 '바로 사가겠습니다.' 했단다. 186의 키를 20인치 자전거에 구겨 넣어서 서커스 단원처럼 집까지 타고 왔다. 끌고 오지 그래냐는 나의 물음에,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눈빛을 한번 발사하더니 이내 이렇게 말한다.

"안전한지, 직접 내가 타봐야지."

 그날은 마침 보슬비가 내려서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무심히 툭툭 털면서, 그렇게 나의 새로운 자전거를 배송 완료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신랑입에서 나온 말이 바로 이것이다.  

"결혼 잘했네, 신랑이 이런 자전거도 사주고."

그렇다, 보통의 자전거가 아니다.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당근맨의 타조 배송이란 수고로움과 직접 안전성 테스트를 거쳐 검증된 자전거이다. 그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자전거가 되었다.


 "결혼 잘한 걸로 치면, 이렇게 알뜰살뜰 아끼고 절약하는 부인이 어딨겠어. 복 받은 줄 알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화가 길어지면 또 안 맞는, 우리는 로또 부부이기에, 불혹의 사춘기를 겪고 계신 신랑님인 것을 감안하여 방청객 모드로 격하게 호응해준다. (늙은 상전님이 기에, 모시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신랑과 함께 출근할 때마다 내 자전거를 보며 한 마디씩 신랑에게 건넨다.

"이야, 결혼을 잘해서 이런 자전거도 타고. 능력자야. 난 얼굴만 보고 결혼했는데 말이지? 하하."


 메마른 결혼생활에

이렇게라도 잔재미를 찾아가는 노오력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당근맨은 언제나 타조배송 상시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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