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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김안녕 Sep 25. 2020

6. 18살이 창업은 무슨!

골방 김안녕 과거 특선, '나는 왜 살았을까?' - 6편

'똥도 푸짐허네' - 창업을 하겠다고 하자 한 지인이 내놓은 반응


    

 학업을 포기하고 등교 후 잠만 자던 나날의 연속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남들은 벌써부터 수능 대비를 한답시고 열을 올려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라는 인간은 맨날 책상에 엎드려 팔자 좋게 잠만 자고 있으니 -등교 후 점심도 먹지 않고 하교 때까지 잠들어있곤 했다- 그런 내가 얄미워 보였나 보다. 마침 그날은 재잘 소리들이 나쁘지 않아 이어폰을 끼지 않고 잠들어 있었는데, 그런 내 앞자리에서 모여있던 여학우들의 말소리가 내 잠을 깨웠다.


"쟤는 왜 맨날 잠만 자는 거야? 인생 포기했나?"
"냅둬~ 이런 애들이 우리 밑바닥 깔아주는 거지 뭐."
"저러면 인생 금방 조져. 망해라!"



 그 말이 귀에 박히는 순간 다시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내 딴에는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조용히 학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저런 저주 어린 말들을 나에게 퍼붓는 거지?'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학교에 와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들의 면학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저주'를 내 두 귀로 똑똑히 듣고 나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재고를 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라고 목적 없이 막살면서 맘이 편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앞으로 뭘 먹고살지?' 혹은 '나는 뭘 잘하지?' 같은 자아성찰부터 '이렇게 살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겠다' 같은 미래 고찰까지 이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 결론 내린 바로는 나는 학생의 신분이지만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공부 말고 다른 걸 잘해본 적도 없는 이른바 '잉여인간'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어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삶을 개조할 수 있는가?', '잘하는 것이 생겨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 중 잘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니 '패션 코디에 관심이 많다'라는 결론이 나왔고, '지금껏 누가 시켜서 하는 수동적인 일들을 해왔으니 -이를테면 부모님이 시키는 공부 같은- 이제는 주관적인 일을 해보자!'라는 결론 끝에 나온 것은 '패션 코디 서비스 창업' 이였다.




 그러나 창업의 창자도 모르거니와 공부 말고는 다른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뭘 할 줄 알았겠는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에 '출사표' 비슷한 것을 올리며 주변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사업할 거라고, 뭐든지 좋으니 도움을 달라고!


이런 식으로 출사표를 썼다. 지금 봐도 참 옹골차게 글을 잘 쓴 것이..


 예상했던 대로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 허구한 날 학교에서 잠만 자는 '잉여인간' 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뭔 놈의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나라도 좋게 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지인들은 '똥도 푸짐하구먼', '지 X 하네' 같은 예쁜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제 와서 보면, 그런 반응들이 나의 의욕을 더 돋구어 주었던 것 같다. '내가 꼭 성공해서 너희들 앞에 당당히 성공한 내 모습을 보여주겠다!' 같은 촉진제 역할을 해주었달까.


 다행히 안 좋은 반응들 속 나의 출사표를 긍정적으로 봐주었던 지인들이 몇몇 있었다. 대부분 나와 같이 패션에 관심사를 두고 있었지만, 사업의 사자도 모르는 학생들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누군가와 나의 뜻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렇게 나를 포함한 4명의 고등학생은 페이스북 페이지 '코디해드립니다'를 만들고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첫 페이스북 대문 이미지. 허접하지만 나름 남성 코디, 여성 코디 나눠져 있기까지 하고..



 사업 아이템은 단순했다. '그간 연예인이나 VIP 등의 전유물이었던 패션 코디를 일반인들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하는 비전이 있었으며, 주 비즈니스 모델은


1) 패션 코디가 필요한 사람이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하여 우리 측에 코디 문의를 한다.

2) 코디가 필요한 상황, 코디가 필요한 사람의 신상 정보/취향 등을 전달받아 우리와 제휴를 맺은 업체의 옷으로 가장 적당한 코디 리스트를 만들어 준다.

3) 고객이 마음에 들어하는 코디가 있으면 해당 코디를 구매하고, 구매까지 이어지게 되면 제휴 업체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말이 사업이었지, 동아리 수준이었다. 사무실이 없는 건 당연했고 다들 살고 있는 곳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항상 스카이프로 모여서 회의를 했다. 다들 나와는 달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기에 사업에 올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비용상 꿈도 못 꾸었기에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 만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수익이 제로에 수렴하는 건 당연했고. 그럼에도 우리는 꽤 열심히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열심히 팀을 꾸려나갔다. '사업은 이런 것이다' 같은 정의를 몰랐기 때문에 때문에 우리가 마냥 잘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물론 주변에 '왜 그런 식으로 하냐!' 같은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었고!   


변변찬은 사무실 하나 없기도 하고, 다들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항상 공용회의시설을 대여하여 업무를 보곤 했다.


 예의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몰랐기에,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나 단체에 무식하게 머리부터 들이밀고 봤다. 이를테면 상대방 대문을 쾅쾅 두들기면서 '안녕하세요. 저 이런 거 하고 있는데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같은 멘트를 날리는 느낌이었달까.


 그딴 식으로 했는데도 정말 운이 좋았다. 팀을 만든 후 창업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무작정 '전국청소년창업협회'라는 곳에 블로그 댓글을 남겼고, 회신이 와서 협회와의 연을 이어가는 것도 모자라 협회 운영진으로써 활동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본편으로 기재하겠다- 또한 고3이 되고 나서 배정받은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른바 '꼰대'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셨는데, 놀랍게도 나의 꿈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합의 끝에 '등교해서 출석체크만 하고 돌아가서 업무를 본다', '유급 조건 전까지만 무단결석을 허용해준다' 등의 조건을 받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 말고도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양손가락으로 다 셀 수가 없을 만큼 많으니.


학교 빠지고 이런 저런 외부활동하러 참 많이 다녔다. 물론 놀러도 많이 다니긴 했지만..


 머리가 좀 크고 나서 스타트업에 대해 어느 정도 빠삭한 지금에야 와서 돌아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렇게 1년간 여러 지원을 받으며 -고등학생들이 사업을 한다고 하니 귀엽게 봐주셨던 분들의 도움을 깨나 받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앞만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수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은 우리가 당신들은 찾아가지만, 1년 후에는 당신들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만들겠다!' 같은 막연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월마다 들어오는 문의 수가 최소 100건은 되었고, 따라서 들어오는 수입 또한 푼돈이었지만 꽤 짭짤하게 들어왔다. 그것이 작고 귀엽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 느꼈던 '성공'의 맛이었다.   


 같이 꾸려나가는 팀이다 보니 항상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들을 해결해 나가는 재미로 사업에 임했다. 특히 내 개인적인 목표로는 '열심히 하는 나의 모습을 당신들에게 떡하니 보여주겠다!' 따위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사업을 하며 이뤄낼 수 있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렇다. 중학생 때부터 나를 싫어하며 괴롭히는 학우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내가 총괄했던 큰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행사에 오는 것도 몰랐는데, 강연대에 서서 쭉 둘러보다가 그 친구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 놀람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물론 나 말고도 팀원들 각자의 목표하는 바가 있었기에 조화롭게 팀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돈이 되지도 않는 이런 것에 열정을 쏟아 부울 수 있는 팀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팀원들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고, 아마 평생 감사하며 살게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목표를 이뤄 나가는 재미도 느끼며!


 나는,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18살 또래의 소년, 소녀들은 22살까지 청춘을 '팀 코디해드립니다'에 오롯이 투자했다. 패션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자 패션전문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입학하고 반학기만에 자퇴했다-, 팀원들과 손에 깡소주 한 병씩 들고 날을 새며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고, 홈페이지를 제작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손대며 공부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고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기도 하며.


 결론적으로 사업은 와해됐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는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화'가 있었다. 나는 수익을 당장 극대화시키기보다는 이른바 '뜻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명분을 먼저 만드는 것을 원했으나 팀원들은 '사업이라면 당장 수익을 내야 한다' 같은 의견 대립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팀의 생사를 건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가 기획 과정에서 엎어진 이후로 하나둘씩 팀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대표인 나부터 남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군 입대'의 기로에 서있기도 했었고. 그렇게 내 인생을 바꿔준 '코디해드립니다'는 내가 새로운 프로젝트 팀인 '돕힝연구소'를 꾸리게 되며 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얼마 전엔 내 나름대로 장례도 치러줬다. 사실 아직까지도 1% 미련이 남아있던지라.




 나는 어디 가서 내 사업에 대해 말하게 되면 절대 실패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후회 또한 하지도 않는다. 꿈을 잃고 방황하던 나는 다시금 꿈이 생겨 삶의 원동력을 찾게 되었고, 소심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내 사업 아이템을 PR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내가 사업기획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지금은 굴지의 기업에서 사업기획을 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방법을 깨달았달까. 방법을 깨달은 이후로 이토록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건만, 어찌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개 멋있어..


 연예인 정형돈이 한 프로그램에서 "학업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5천만 명의 사람이 있다, 나는 성공도 5천만 가지가 있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이, 5천만 명의 사람에게 5천만 가지의 성공이 존재한다. 무엇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 각자마다의 성공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나같이 사업으로써, 혹은 학업으로써, 예술으로써 성공을 이루어도 된다. 성공 기준 또한 각자마다 다르다. 나는 사업을 통해 인생 비전을 찾았다는 것을, 누군가는 학업을 통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누군가는 습작을 통해 개인 출품전을 하는 것을 성공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학업에 묶여 다른 길을 생각해 볼 틈조차 없었던 탓이겠거니. 간혹 가다 혹자들은 나에게 "일찍이 꿈을 찾아 나선 것이 부럽다. 난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뭐든지 해보라"며 조언을 해주곤 한다. 정말 무엇 이어도 상관없다. 당장 내일 아침에 길거리에 나가 쓰레기를 10개 줍는 것이여도 되고, 공책에 글 한편을 적어 보는 것이여도 좋다. 목표한 바를 이루며 느끼는 바가 생긴다면 그것 또한 당신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성공을 토대로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 낼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뭘 알아서 시작했나!

 



실제로 받은 질의응답


Q: 사업하면서 돈은 많이 벌었냐?

A: 돈은 많이 못 벌었는데, 마음의 양식은 많이 벌어 온 것 같더라. 이거 팔아서 나중에 돈 벌지 뭐.




6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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