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절대 없다
오랫동안 글을 썼고, 쓴 글을 책으로 냈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탓에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고민하며 글로 썼다. 약점은 다른 면으로는 장점이 되는 법이라 역사, 문화, 과학, 인문 등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책들은 서점에 도서관에 누군가의 책장에 있다. 모두 잘 있는 걸까?
글은 말보다는 수명이 긴 편이라 오랫동안 읽힌다. 하지만 읽히지 않는 책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이 그런 처지다.
지난봄, 내 책의 절판 관련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받고 한참 동안 답 메일을 보내지 못했다. 성미 급한 나는 회신해야 할 것은 바로바로 처리를 하는데 그 메일만은 그럴 수 없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출판사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맘과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맘.
오랫동안 책을 냈으니 절판되는 책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동안 내가 쓴 책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책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독자들이 읽기 좋게 다양한 기획을 입혀 책을 만들었다. 가끔은 만화책으로도 만들어서 더 힘들게 작업했다. 그러다 오롯이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를? 나를 왜? 내가 왜?’
이런 물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출판계는 달라지고 있었다. 웬만한 글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조건이 인지도다. 셀럽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름만 말해도 누구인지 아는 사람, 혹은 이미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 수많은 팔로우를 가진 사람 등. 사람들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오랫동안 나를 보아온 편집자는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일기장을 제게 내주세요. 에세이 시장은 인지도가 없어도 가능성이 있어요.”
편집자는 아이를 키우며 글을 써온 나의 이야기가 일하는 여성에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 글은 재미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해보겠다고 했다.
내가 기획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의 글을 쓴 적은 많았지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글에서 나를 얼마나 드러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사생활이 너무 드러나서도 안 될 것이고, 내 글로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서도 안 될 것이었다. 나는 글쓰기에 앞서 나를 위한 지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책상 앞에 붙여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신이 나기도 했던 거 같다. 편집자는 글이 좋다며 만족스러워했고, 열심히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손발을 맞춰 예상보다 빨리 초고 작업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갔다. 그림 작가에 디자이너도 정해지고 그렇게 내 손에 내 책이 전해졌다.
책을 낼 때면 늘 자식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특히 더 했다. 책을 받아 든 날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혼자 조용히 읽고 싶어서 책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뛰어나왔다. 첫 장에 바로 오자가 나온 것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나온 실수였다. 첫 장에 이런 커다란 실수가 나오다니 속이 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화를 낸데도 무엇을 한데도 오자는 달라질 수 없으니 말이다. 편집자는 죄송하다며 열심히 팔아서 2쇄에서 반드시 고치자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날 수 없다. 2쇄는커녕 이제 절판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은 창고 보관 비용만 발생하는 애물단지가 된다. 나는 더 이상 출판사 사장에게 매달 보관 비용을 감내하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책을 떠나보내도 좋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동안 나를 배려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제 내 책은 내게만 존재하는 책이 되었다. 내가 유명하지 못해서, 내가 더 잘 쓰지 못해서 수명을 다하는 책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책을 쓰는 동안 즐거웠고, 다 아는 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가 위로를 받았으니 한편으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제 시아버지의 납골당에 다녀왔다. 주변 누군가의 납골함 옆에 책 한 권이 꽂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떠날 때 이 책이 납골함 옆에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이야기하니 남편과 아들이 그러면 되겠다고 했다.
“근데 이제 곧 절판되는 걸?”
“엄마 걱정 마. 내가 넉넉히 사두면 되지 뭐.”
“그래, 네가 좀 사주라.”
팔리지 않아 절판될 책을 아들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하며 납골당을 나섰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지드레곤의 말은 정답이다. 영원하지 않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납골당을 나서며 다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