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의 작별편지 '안녕 대우'

이관순의 손편지 19-02

by 이관순

김우중의 작별편지 ‘안녕 대우’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준비 없이 황당한 사고에

직면하게 하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벌렁벌렁 심장을 뛰게도 해요. 하지만

미래를 모르고 사는 인생이 축복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를 알고, 회사가 망할

때를 미리 알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삶은 기력이 빠지기 시작할 테니까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대우는 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이었어요. 그들의 몸짓은

모든 게 새로운 탄생으로 비쳤으니까요. 5대양6대주로 뻗어 오르는 다섯 개의

불꽃을 형상화한 대우의 심벌마크가 그랬고, 그들이 당차게 꿈꾼

‘세계경영’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얼마나 신선했던가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이란 출중한 리더에 대한 믿음, 거듭되는

비약적인 성장, 진취적인 세계경영의 기상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직원을 ‘대우가족’으로 부른 점도 다른 기업에서는

쓰지 않던 휴머니티였고요.


창업 30주년인 1997년만 해도 대우는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그해 특별 메시지를 통해 “대우 30년은 신화도 환상도 아니며,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창조정신, 그칠 줄 모르는 과감한 도전정신, 미래를

지향하는 희생정신이 교직된 역사”라고 대우정신의 숭고함을 자긍했었어요.


도드라진 것은 “대우의 경영활동이 창업 이래 한 번도 굴절 없이 상향곡선을

이어왔으며, 정당한 생각으로 당당히 세계와 경쟁하는 경영의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고 한 점입니다. 그가 두 손을 불끈 쥐며 “정열로, 자신감으로, 새로운

30년을 향해 나가자”고 외칠 때, 참 멋져보였지요.


그러한 대우가, 자긍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대우가, 그로부터 불과 6개월

만에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면서였어요.

IMF사태란 강 편치 한방에 수면아래의 벌레 먹은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1999년 대우는 해체되고 그는 해외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10월에,

김우중의 참회록 같은 글 한편을 읽게 됩니다. 그동안 죽 유럽에 머물던

김우중 회장이 대우가족에게 보낸 편지 한통이 도착한 거예요. 그것이 그의

마지막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20년이 지난 2019년 가을, 자료철에서

우연히 빛바랜 그 때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김우중의 작별편지 ‘대우 안녕’. 문장의 결이 곱고 애잔해서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둔 편지입니다.


❝한없는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오늘 저는 대우가족 여러분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글머리를 시작한 편지는 “여러분과 함께 했던

꿈과 이상 또한 가눌 수 없는 고독이 돼 제 인생의 반려로 남게 되었다”고

경영실패에 대한 깊은 자책감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대우의 꿈과 이상은 이젠 국가의 짐으로 남고, 남은 삶은 가시관처럼

아프게 살아갈 것”이라며, 통회의 절정을 보입니다. 대우가 걸어온 세월에는

국가의 명예와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드리워 있었지요, 하지만 그 여정의

날개가 꺾이며 굴곡진 현대사에 큰 그늘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구조조정의 긴 터널에서 빚어진 경영자원의 동원과 배분에 대한 주의 소홀,

용인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하려던 위기관리,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초래된

경영상의 판단 오류... 뼈아픈 통증을 안고 낯선 이국땅을 돌며 살았던 그의

모습이 구절구절에 녹아 있습니다.


뜬 구름이 된 여생을 가시관으로 쓰고 살겠다고 한 김우중. 이제 80대의

노구를 무슨 위로로, 목표로 지탱하고 살아갈까? 박빙의 승부사로 재계를

호령하고 세계 언론을 놀라게 했던 그. 귀국 후 언제인가부터 알츠하이머

증상이 보인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소슬한 초 겨울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멀어져 간 그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이런 연민은 그 역시 한 치 앞을 못 본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연민을 보낸 지 보름도 안되었는데 그의 슬픈 부음을 듣습니다.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내 앞으로 또 하나의 생자필멸, 회자정리가 이어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 안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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