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없는 문

월간 목마르거든 11월호

by 이관순

청명한 가을볕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눈이

혹해졌습니다. 잡목 가지로 엮어 만든 사립문에 걸린 둥글게

말린 철사 때문입니다.


말린 모양이 꼭 모기향을 닮았는데, 문고리에 끼어있지 않았으면

요즘 사람들은 ‘뭐야~’하며 신기해할 것입니다. 집을 비우면서

이를테면 자물통을 채운 것이지요.


옛 생각에 한참을 철사 문고리를 잡고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

잇대어 외갓집 추억까지 물려 나옵니다. 외할머니는 가을이 되면

새 창호지를 문에 바릅니다. 겨울나기 준비인 셈이죠.


외할머니는 단풍잎을 가져다 문풍지를 덧대어 발라 모양을 내셨죠.

단풍잎 하나가 방안을 예쁘고 운치 있게 만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밤이 되면 외할머니는 그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두십니다.

어린 내가 숟가락이 문고리에 걸린 모양새가 너무 우스워 깔깔대고

웃었지만 그것이 문단속이란 걸 알고 또 웃고 말았지요. 세월이

가고, 집집마다 철제문이 들어섰습니다.


뉘 집 대문이든 철제 사자 얼굴이 달리고 둥근 손 고리가 사자의

입이나 코에 꿰인 풍경을 만들었지요. 덕분에 우스꽝스럽던 숟가락

문고리는 방문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최첨단 경비회사가 집을 지켜주니 문고리커녕, 자물쇠로

잠근 문도 보기 어렵습니다. 아예 문고리가 없어진 집이 많아져

안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문을 얼어주니까요.


모든 문이 꼭꼭 닫혀있습니다. 이상한 목적으로 문을 열려는 사람들

때문이겠지만, 문제는 갈수록 벽이 되고 있는 문이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담장은 높아지고 문은 철저히 폐쇄되고 있는 사회.


학교를 다녀와 방문부터 닫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살짝 앞섭니다.

문이 닫혀있으면 그것은 벽이지, 더 이상 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방 넷은 문이 열려 있지요.


잘 때가 아니면 늘 열린 상태인데, 습관인 듯합니다. 방문이 열려

있을 때 드나들기가 서로 쉬우니까요. 문이 닫혀있으면 쟤는

뭐하는데 문을 닫고 있지?


실눈을 뜨게 합니다. 문이 오래 닫혀 있으면 벽이 되고, 벽은

단절을 가져옵니다. 가족 간에, 이웃 간에, 남녀 간 세대 간에 문이

닫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입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홀만 헌트의 대표작 ‘세상의 빛’도 ‘門’이

주제입니다. 런던의 영국 성공회 대성당에 걸려있지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다음의 거대한 돔을 인 십자형 성당입니다.

다이애나와 찰스 황태자가 결혼한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주위의 초현대식 빌딩에 기죽지 않고 런던의 스카이 라인을

장식하고 있지요.


홀만 헌트가 그린 ‘세상의 빛’엔 문고리가 없습니다. 문에 문고리가

없다는 게 낯설지 않나요? 미술평론가들은 이를 미완의 완성이라

하지만, 화가는 문고리가 없는 문에 나름의 의미를 둡니다.


구원을 뜻하는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려면 인간이 결단해야 함을

상징합니다. 문안의 사람이 문고리를 잡고 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리가 없는 닫힌 문은 밖에서 열 수가 없습니다.


마음 문은 진실로 내가 열어야만 열리는 문임을 암시합니다.

화가는 인생의 본체를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미움이든 원망이든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행복도, 인생사가 다 그렇지 않을까요?


옛날, 중국에 장풍 고수가 있었습니다. 뭐든 단 번에 날려버리는

신통한 능력으로 유명했어요. 하루는 그의 호언대로 사람들과

내기를 했습니다.


사면이 벽으로 된 방에 그를 가두고 불을 땝니다. 방은 더워지는데

아무리 장품을 날려도 벽은 꼼짝을 안 합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합니다. 기를 쓰지만 요지부동입니다.


마침내 장풍을 포기하고 창피하지만 문고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문에 있어야 할 문고리가 없습니다. 그는 절망 상태에서

죽기 살기로 문 쪽을 향해 온몸을 던집니다.


와장창~ 몸이 문에 부딪히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그는 밖으로 나가떨어졌습니다. 그 문은 처음부터 잠글

필요가 없는 문고리가 없는 문이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키는 내 손에 들려 있어요.

밖에서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문을 여는 결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니까요.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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