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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짓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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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Sep 22. 2023

작은 것에 좋아하고 작은 것에 마음상하고

조명 공사

나는 벽이나 천장, 가구 등을 은은하게 비추는 간접 조명을 좋아한다. 설계사무소에서 방마다 간접조명을 디자인해 주었는데 등을 켜면 은은하게 벽을 비춰서 무척 마음에 든다. 내장 목공 공사 시 경사지붕과 벽이 만나는 부분에 마루 쪽같이 얇고 긴 합판을 대고, 그 안에 빛 색깔이 은은한 T5등을 넣었다. 욕실 거울에도 간접등을 넣어 거울 밑으로 빛이 비치도록 했고, 주방 다용도실 선반에도 간접등을 설치했다. 지금도 여전히 조명을 켤 때마다 기분이 좋다. 


시공사에서 준 견적서의 조명항목에는 최소의 금액이 임의로 책정되어 있었다. 간접등과 매립등은 시공사에서 주문했고, 그 외 조명은 내 취향에 맞게 직접 주문을 했는데 크게 비싼 조명을 사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정산 과정을 세밀하게 거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시공 과정에서 단가가 뚜렷하게 큰 공사가 발생 또는 삭제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작은 변동은 수시로 일어나기에 세밀한 정산은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다. 


조면을 고를 때 건축사무소에서 집의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조명샘플을 몇 개 제시해 주셔서 대략 감을 잡고 필요한 조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립등 외에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조명은 식탁 위에 설치할 펜던트등과 복도와 방에 설치할 벽등, 집 외벽에 설치할 외부등이었다. 스케치업으로 우리 집의 각 공간을 살펴보며 어떤 조명이 어울릴지 상상하기도 하고 을지로 조명거리나 가까운 조명매장을 방문해 눈으로 구경도 했다. 


온라인숍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조명을 검색하는데 어마어마한 조명 리스트가 펼쳐졌다. 그중에서 샹들리에 스타일의 블링블링한 것이 자꾸만 내 시선을 끌었다. 인테리어 콘셉트를 미니멀과 화이트로 정했는데 화려한 것이 어울릴지 모르겠고 왠지 건축사무소에서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 결국 화이트, 심플, 슬림 스타일의 등을 골랐다. 결과적으로 집과 잘 어울리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를 수 있어 만족하지만 한 곳 정도는 화려한 샹들리에를 설치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다. 지금도 샹들리에가 어른거리는 걸 보니 그냥 밀어붙일걸. 


외부등은 종류가 정말 한정되어 있어서 결정장애를 일으키지 않아 오히려 고마웠다. 역시 화이트, 심플, 슬림스타일로 골랐다. 마당에 잔디 등 3개를 설치하기 위해 미리 마당에 전선을 매입해 놓았고, 입주 후 조경공사 시 조명을 사서 설치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살아보니 마당 잔디 등을 비롯한 외부등은 태양열 등이 최고인 것 같다. 낮에 알아서 충전되고 밤에 어두워지면 알아서 켜지고 전기요금도 들지 않으니 말이다.


조명 공사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당구장인데, 원래는 T5등을 당구대 사이즈에 맞게 사각형으로 둘러 천장에 매립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현장소장님이 등 매립이 힘들다고 해서 그냥 돌출시켜 달기로 협의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어설프게 공사가 되어 지금도 볼 때마다 별로이고 속상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사를 다시 하고 싶다. 


설계 때 신중히 계획했어도 시공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가져야 하긴 하지만 당구장 조명 같은 경우에는 끝까지 설계도면대로 시공할 것을 고집했어야 했다. 매번 융통성 있게 판단하느냐 설계도면을 고집하느냐 그걸 판단하기가 참 힘들었다. 인테리어 공사도 해 본 적이 없고 처음 내 집을 가져보는 거라서 내 취향을 아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기도 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작은 것에 마음이 무너지는 집짓기. 힘들기만 하면 20년 늙을 텐데 행복하기도 해서 10년만 늙는 건가. 주택살이도 마찬가지여서 6년째 살고 있는 집에서 여전히 간접조명을 켤 때마다 기분이 좋고, 밉게 공사된 당구장 조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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