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짓기3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한무 Oct 21. 2023

집의 외모

자신의 분위기와 결을 맞춰 볼 것


준공을 한 달 정도 남겨 두고 도배작업이 마무리되었고, 남은 일은 마루 깔기, 2층 난간 등 유리작업, 욕실도기 설치, 가구 설치. 이 작업들이 마무리되면 입주였다. 입주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나는 도통 실감이 안 났다. 가장 큰 이유라면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연속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지치고, 부족한 나 자신에게 지쳤다.


그런 마음이어서 그랬을까, 비계를 털어내고 하얗게 스터코로 마감을 한 우리 집의 모습을 보는데, 두둥! 너무 못 생겨 보이는 게 아닌가! 하얀색 외관이 가볍고 흔해 보이고, 전면의 창문은 왜 이리 왕눈이 같이 커 보이지? 와~ 예쁘다~ 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서 울타리를 쳐서 못생긴 얼굴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못마땅했다. 집에 인격이 있다면 참 미안할 정도로 그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집을 짓기로 결심했던 초창기에는 내 땅이 생기고 집이 지어지기만 한다면 겉모양은 어떻든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창고같이 지어도 되고 집 내부 마감도 그냥 보통 수준이면 충분했다. 외관은 마당과 잘 어우러지기만 하면 하얗든 까맣든, 벽돌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고, 마루 같은 내장재도 가성비 좋은 자재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었다. 예산 문제도 있었지만 정말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큰 관심도 고집도 없었다.


그런데 집에 대해 공부를 거듭하고 전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게 늘어날수록 눈이 점점 높아지고 숨어있던 내 취향과 욕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루를 고르기 위해 전시장에 가서 원래 하려고 했던 강마루를 보는 데 눈에 차지도 않았다. 내게 고급스러운 바닥 질감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걸 새로이 발견했다. 외관도 마찬가지. 스터코로 뿜칠을 한 외관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주었지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벽돌의 섬세함과 묵직함이 아름다워 마음을 뺏겼다. 예산문제로 벽돌이 아닌 스터코를 선택하게 되었고 아쉬움이 내내 남게 되었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내가 집의 외관에 이렇게 흔들리다니. 솔직해지자면 외모도 내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잘 생기고 예쁜 외모를 추구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각자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찬찬히 파악해 보고 그에 맞게 가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집의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도 사람의 옷이나 화장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 사람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외관의 소재가 고급스럽고 어떻고를 떠나서 내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아닌지 가만히 결을 맞춰보기보다 예산에 맞춰 선택한 게 후회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짓고 있던 지인이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빨리 입주해서 살고 있던 지인 언니는 우리 집 사진을 보더니 자신은 하얀 집을 짓고 싶었다면서 우리 집이 예쁘다고 했다. 언니는 하얀 집을 못 지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눈에는 언니의 검은 벽돌집이 참 예뻐 보였다. 언니가 집을 위해 수고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값져 보였다. 아, 언니도 우리 집을 보며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우리가 서로 자기의 집에 대해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 아름답게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증의 현장소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