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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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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21. 2022

이 땅입니까?

LH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던 중 용인의 한 택지지구에 땅 매물이 나온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이미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는, 잘 알려진 택지지구의 땅이었다. 예산을 조금 웃돌긴 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 직접 가서 보니 도서관이 바로 앞에 있고, 남향에다 야트막한 산을 접하고 있고 주변이 조용했다. 대단지 아파트와 인접하여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학교도 가까워 장점이 많은 땅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멀리 고압선이 보여 눈에 거슬린다는 거였는데, 그것 말고는 대체로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직접 가서 땅을 보았을 때 어떤 이유에선지 감정적으로 확 끌리지는 않았다. 느낌이 팍 오지가 않는 거다. 땅을 보러 간 김에 근처 부동산에 들러 해당 택지지구의 다른 땅도 둘러보기로 했다.


부동산 분과 몇 개의 땅을 둘러보는 데 매물로 나온 땅들의 장점을 열거했다. 예를 들어 경사가 꽤 심한 토지의 경우는 지하 주차장을 파는 데 토목공사비가 3천만 원 정도 추가되지만 필로티 구조가 되어 1층과 마당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장점이 있었다. 부동산 분은 해당 택지지구의 필지가 이제 거의 다 소진되어 가니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빈 땅들이 제법 보였지만 집을 짓고 있는 땅도 꽤 보였고 실제로 매물이 하나 둘 팔려가고 있었다. 땅 값도 조금씩 달랐는데, 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향과 모양이 주요하지만 결국 땅 주인 마음이란다. LH매물로 올라온 도서관 뒤 땅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LH에 매물로 올라온 이유는 애초에 분양받은 사람이 사정상 LH에 다시 반납한 땅이며, 땅 모양이 사다리꼴이라서 집 짓기가 애매한 땅이라고 덧붙였다. 


특별히 마음이 가는 땅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처음 본 도서관 뒤 LH 매물이 계속 생각이 났다. 확 끌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이 바로 앞에 있고, 여러 가지로 좋은 땅이었다. 과연 우리 가족에게 맞는 괜찮은 땅일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눈여겨보던 건축가 몇 분에게 땅에 대해 문의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읽었던 책에서 '건축가와 땅을 찾는 일부터 함께 하면 좋다'는 내용이 생각나 용기를 내 본 것이다. 두 분으로부터 답 메일이 왔는데 두 분 모두 땅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다. 앞에 도서관과 녹지가 있어 좋고, 땅 모양이 어떻든 거기에 맞춰 충분히 집을 잘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그 땅을 찾아가 봤다. 역시나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 또 그 땅이 내 머릿속을 다시 꽉 채웠다. 한 동안 그렇게 그 땅에 대해 집착하면서 번민했다. 평일과 주말, 낮과 밤 등 다양한 시간대에 가족과 또는 혼자서 네 번이나 그 땅에 가봤지만 땅을 밟고 설 때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것 같은 불안감과 동시에 빨리 땅 찾기를 끝내고 집을 짓고 싶다는 조급함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혼란했던 것이다. 땅을 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야, 이제 볼만큼 봤으니 사버리자'라는 생각이 들고 두 마음을 오가다 보니 결정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선택 장애로 괴로움이 더해가던 중 그날도 역시 LH 홈페이지에 들어가 땅 매물 리스트를 보는데, 도서관 뒤 땅 매물이 사라져 있었다. '엇, 뭐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안 했는데 누가 내 땅을 산거야!?!???!!' 팔린 것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내 마음속에서 이미 그 땅은 우리 땅이었나 보다. '마음만 좀 정리하고 나서 결정할 테니 딱 기다리고 있어'라며 땅이 언제까지나 내 선택을 기다리며 매물로 남아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망연자실했다.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땅이었는데 바보같이 낚아채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 땅의 주인은 따로 있었을까? 우리가 땅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서 어느 정도 눈을 갖춘 후에, 조금 더 늦게 그 땅이 우리에게 찾아와 줬더라면 우리 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언젠가 그 땅에 가본 적이 있다. 집이 지어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려는 찰나 마당에 나와있는 그 집 아이의 장난감을 보니 '지금 이 집에 사는 가족이 이 땅의 주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덤덤하게 들었다. 그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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