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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나비효과)

by 황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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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첫사랑

- 나비효과 -


서울에 상경해 하루하루 버티며 살다가 옥탑방이지만 작은 잠자리 즉 거처를 구하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기니 겨우 이 노래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것도 타인의 이어폰을 통해서... 이 노래 '첫사랑'은 그룹 나비효과의 데뷔앨범에 나온 노래고 유일한 히트곡으로 알고 있다. 이 노래는 나를 둘러싼 당시의 배경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한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른 보컬 김바다는 시나위 5대 보컬 출신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기교가 없는 록 창법의 시원한 가창력이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독립영화협의회의 워크숍은 3차까지의 비디오 작품을 만들고 과제와 합평회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3개월 후 최종 4차 16mm 필름으로 공동작업하고 보고 발표회를 통하여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모두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발전적인 이후의 과정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작품은 팀원들의 기획을 내고 그 기획안을 설명하고 관심과 공감이 가는 작품에 투표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 작품은 시나리오로 나와야 하고 그 작품에 줄을 선 참여자들이 같이 만드는 작품이다. 그 당시 27기 워크숍 스물 한 명의 참가자가 낸 기획안 21개가 각각 프레젠테이션을 각각 했다. 기획자가 설명을 한 후 투표를 해서 인기 있는 최종 3 작품을 골라냈다. 내 기획안도 하나로 선택되었다.


3개의 졸업작품 중 하나로 선택이 되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정말 보람이었고 기뻤다. 그것도 16mm 필름카메라로 작업하는 역사적인 첫 영화니까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용산역 플랫폼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이다. 나의 영화 인생의 힘찬 출발에 조금 감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난 내 기획안으로 곧 단편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6명씩 팀을 이룬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며 수정 작업을 했는데 각자의 생각이 너무 달랐고 그 의견을 내가 조율하지를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난도질을 당했다.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다. 역시 내 집중력의 부재와 얇은 귀가 문제였다. 결정을 지어줄 때는 지어야 하는데 우유부단한 내 성격도 문제였다.


지금은 사라진 필름, 16mm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을 했다. 내가 쓴 것은 말년휴가를 나온 군인이 재수학원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갑자기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제목은 ‘주말의 명화’라는 제목의 단편영화. 한강 양화대교, 신설동 대성학원, 그리고 종로 3가 서울극장 뒤 여관방에서 실내 촬영을 했다. 그러나 작품은 이도 저도 아닌 ‘별로’로 나왔다.


양화대교 아래서 재수학원에 다니는 여자 친구와 캔맥주를 먹고 답답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어지는 장소는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는 여관방. 텔레비전에서는 MBC ‘주말의 명화’의 시그널 음악이 나오고 잠이든 군인을 두고 옷을 벗은 재수생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여하튼 6분이 조금 넘는 이 영화는 기승전결이 불확실하고 주제의식이 불분명해서 졸업 작품 상영회 성격의 보고시사회에서 다른 작품에 주목을 뺏기고 그냥 당연히 잊히게 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이후 난 다른 작품의 스텝의 되어 공사장 막일을 하다가 촬영을 돕고 또 독립영화협의회에 자주 나가 매월 하는 독립영화발표회의 섭외와 상영 후 만든 사람과의 대화 등 진행을 맡게 된다. 당시 여러 곳의 상영 공간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그중 한 곳인 동대문 두타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 5층에서 발표회를 몇 달간 진행도 했다. 동대문 두타 빌딩에서 공간에서 상영회도 하고 홍보팀에서 매달 50만 원을 지원받는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작품 출품자에게 상영비도 주게 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제작 일정과 비용이 들어가고 제작 후기가 들어가는 작품집도 제본하여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또 끝나고는 뒤풀이도 했었다. 그 당시 난 돈 없이 어딘가 쏘다니고 걷는 걸 좋아해서 미용실에서 여성잡지에 난 동호회 모임을 알게 된다. 호기심이 생겨 그때 난 다음 카페 “뚜벅이의 길”(현재 세상걷기)이란 걷기 모임 카페에 들어갔다.


그냥 그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만나 걷는 게 일이었다. 매년 여름엔 한강도 밤새 걸었다. 준비물도 필요 없고 뒤풀이 밥값 만 원만 있으면 돼서 참 부담이 없었다. 거기서 알게 된 여인이 있었으니 두그둥! 이 노래는 그녀의 최애곡으로 그녀가 들려줘서 알게 된 노래였다. 그리고 금방 나도 이 노래 “첫사랑”의 매력에 그녀와 빠져들게 되었다. 닉네임이 ‘hera’라는 그 여인은 무척 명랑한 여자였다.


키가 크고 긴 머리의 육감적이고 쾌활한 직장인 아가씨였다. 나의 보헤미안 기질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조금 멍하지만 순수한 어떤 나도 모르는 매력(?)이 있었지 않을까. 여하튼 술도 잘 마시는 그녀는 나름 대기업에 다녔고 잘 웃고 명랑 유쾌 발랄한 여자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노조 활동도 했었단다. 사람은 반대 성격의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자기가 가진 것과 반대의 사람에게도 끌리는 모양이다.


난 당시 그 옥탑방에서도 보증금을 까먹고 도봉산 아래 반지하 보증금 200에 월 15만 원의 월세방으로 이사 간 뒤였다. 유일한 사는 재미는 그 뚜벅이 모임에 나가 신나게 걷는 일이었다. 또 같이 밥을 먹고 술 한잔 하는 일이 즐거움이었다. 나는 열심히 활동해 바로 운영자가 되어 주중에도 모임을 만들어 열심히 모임을 활성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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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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