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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Oct 07. 2024

혼자 북치고 장구 친 일요일

침대에서 나오면서 헛웃음이 터짐.

새벽 한 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까부터 잠이 깼는데 유튜브를 보며 뒹굴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하면서 웃음이 터졌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네?"


어제는 일요일.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혼자 일정을 만들었다.


아침을 8시 반쯤 챙겨먹고

요즘 읽는 책,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반 시간쯤 읽고 덮었다.


친구가 보내준 책, 공지영의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조금 읽었다.


이 책은 카톨릭 신자인 공지영작가의 성지순례기인데

처음 이 책을 받고, 제목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내 친구가 나를 저주하는 건가?

싱글 10년차인 내게 선물할 책이 맞는 거야?


근데 공작가의 언어는 내가 공감할 부분이 많았고,

이국의 사진들이 멋지고,

지리산 자락에서 혼자 사는 그녀의 집도 예쁘고,

그래서 그 책을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고 있다.


허름하게 옷을 챙겨 입고,

새 차 살 때 얻은 큼지막한 비닐백에 잡동사니를 담아

둘러 매고 집을 나섰다.


우선,

내가 보살펴야 하는 집,

<메이퀸 빌라>에 가서 화단과 주차장과 분리수거장을 둘러봤다.

일요일 오전 다가구 주택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빌라 앞 사거리에는,

평소와 같이 명견백구가 동네를 순찰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택배차량, 이웃사람들을 잘 구분해 가면서

짖을 데는 짖고, 꼬리 칠 데는 꼬리 치고......

나한테는 무반응이다. 칫!


새로 산 차,

흰색 SUV를 몰고 기린로에 있는 강샘네 연습실로 갔다.

요즘 한 달여 <승무 북장단>을 익히는 중이다.


장차 '명무 강샘'이 승무를 무대에 올릴 때,

장구 장단을 맡아 치기 위해 나도 승무 북장단을 알아야 하는 거다.


내가 춤과 장구를 좋아해서 10년을 배우다 보니,

나이 들고도 언제까지나 장구를 매고 뛰어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앉아서 장단 치기도 배워야 즐길 수 있으니 요즘 그걸 시도하는 중이다.


한 시간 반정도 혼자 외북을 치며 순서를 외웠다.

연습실 불을 끄고 문단속하고,

다시 차를 돌려 금암동 장구 연습실로 갔다.


악기장에서 장구와 채와 끈을 챙겨 들고,

연습실 거울 앞에 섰다.

'설장구 개인놀이'를 실수 없이 6분 정도 연주해야 한다.

다음 달 초에 한옥마을에서 강샘공연이 있는데 나도 무대에 서기로 했다.


긴장되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기꺼이 출연을 결심하고 나를 연마하고 있다.

그러고 싶다.

그래야 한다.


두 시간 정도 혼자 장구연습을 했다.

약간 목이 메이는 듯하고 진력이 났다.

오늘은 신명이 안 났다.


어느 날은,

온몸이 펴지고 장단이 자연스럽게 골라지고 신이 나는데

오늘은 아니네.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네시쯤, 배가 고팠다.

날씨도 흐리고 몇 방울 비가 온 날.

보일러를 켰다.


마침 냉장고에 애호박, 감자, 양파, 고수가 있다.

착착 썰어서 부침개반죽을 하고

치익! 치익!

호박, 감자 익는 냄새와 기름 냄새가

우리집 빈 공간에 가득 퍼졌다.

기분이 좋아졌다.


한 장을 부쳐서 넓은 접시에 담고,

한 장을 더 프라이팬에 얇게 올려두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호박전을 미친 듯이 먹었다.


이슬 맺힌 유리잔에 맥주도 개꿀맛!

맥주 곁들여 호박전 두 장을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양치에 세수만 하고 뎁혀진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

노곤해서 꿀잠을 잤다.


밤 12시 몇 분에 잠에서 깼다.

되짚어 봤다.

엊저녁 7시에 누웠나?

괜찮아, 잘 잤으니 됐다.


이제 벌떡 일어나 샤워하고

거실에 나가 책이나, 글이나, 그림이나......


나 어제,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놀았다.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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