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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트너 Mar 23. 2020

할머니는 껌을 판매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사랑을 나눠 줄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마음까지 시려오는 추위를 피하기 좋은 곳 중 한 곳이 지하철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하기에 오갈 곳 없는 노숙자의 추위를 피해 가는 잠자리가 되어 준 것이 아닐까! 가슴팍까지 떨려오는 추위를 잠시나마 비킬 곳을 찾아서 말이다. 코를 강하게 자극하여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짠한 마음이 든다.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테고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빠였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그 무엇이 삶의 끝자락마저도 잡지 못하고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작은 실오라기조차 허용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많이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가끔씩은 껌을 팔아달라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강남 역에서 분당선 쪽으로 나가는 출구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거기에도 할머니 한 분이 껌을 가지런히 발 앞에 줄을 세워서 앉아 계시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신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달리 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여성분께서 아이를 바라보듯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발걸음을 거북이보다도 느리게 움직이고 온 몸의 세포를 동원해 담소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다니시는 행인이신 것 같았고 겨울이라 할머니를 위해 색이 곱게 물든 스카프를 선물하시는 듯했다. 그 행인의 여성분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을 머금고 계셨다. 거북이보다도 느리게 걸으며 잠시나마 따뜻한 광경을 보며 내심 따뜻함의 기운을 온몸으로 퍼뜨렸다.


그다음 날(강의가 있어서 매일 같은 길을 지나가야 했다) 그 계단을 내려가는데 오늘은 웬 남자분이 앉아 계셨다. 궁금한 나는 또 속도를 10배속 느리게 조절했다. 뒤에서 보았을 때의 그림은 담소만 나누고 계신 듯했는데 한 발자국 정도 가까이 와서 보니 두 분이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으나 그 남성분께서 할머니의 식사까지 사온 듯 보였고 소풍을 나온 할머니와 손자처럼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연이어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때의 그림들이 아직도 사진처럼 생생하게 가슴속에 찍혔다. 그리고 깨달았다. 할머니는 껌을 팔기 위해 거기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님을.......



어린아이의 세상은 엄마의 사랑으로 세상을 배우며 싹을 틔웠듯 할머니도 계단에 앉아 사랑의 나무가 자신에게도 지지 않음을 느끼고 계셨다. 그 사랑의 나무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머니의 행복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을 고속열차를 탄 듯 숨 가쁘게 움직이며 살아내고 있다. 살아있음에 즉 존재에 대한 행복을 느낄 새도 없이 말이다. 공기가 있어 매일 편하게 숨을 쉬는 것에 익숙하다. 공기가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며 감사함까지는 생각조차 못한다.




나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 매일이 바빴고 10분조차 잘게 쪼개어 시간을 금 인양 아껴 썼다. 새벽 5시에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숨 가쁘게 달려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헐떡이는 숨으로 직장으로 출근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타인과 보내며 긴 하루를 채우고 겨우 연명하고 있는 듯한 숨을 몰아붙여 집안을 돌보았다.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면 멋진 꽃길을 우아하게 걸을 줄 알았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 볼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고 막연한 꽃길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누가 인생은 마라톤이라 하지 않았던가! 마라톤인 인생을 너무 스프린트 선수처럼 뛰어왔더니 배터리기 방전됐다. 더 빨리 꽃길을 걸을 것이라며 확신에 찬 걸음걸음이었건만 꽃길은 언제쯤 나타나는 것인가?


잠시 쉼을 선택한 후 이제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늘의 살아있음이 행복인 것인 것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사랑을 나눠주기도 하고 나눠 받기도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옆에 온전한 모습으로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인 것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의 미소를 바라볼 수 있는 오늘이 있어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하루도 행복한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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