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아이디어 발상
지금 제주 서귀포 기당미술관엔 변시지 작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황톳빛 바탕 위에 단순한 붓 터치로 내갈긴듯한 그림엔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바람 부는 땅과 거친 바다에서 당나귀와 까마귀를 벗 삼아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엔 고립과 고독 너머 어딘가에 펼쳐진 이상향에 도달하고픈 역동적 에너지도 넘실거린다. 문득 세속을 등지고 평생을 방랑했던 바쇼의 하이쿠가 떠오른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여행에 병드니, 꿈에서 마른 벌판, 헤매다니네’와 같이 그의 작품 속에도 자연만을 의지해서 정처 없이 방랑하는 늙은 시인의 허무하고 소외된 인생이 스며 있다. ‘서늘하게 벽에다 발을 얹고 낮잠을 자네’와 같은 시 속엔 늙은 시인의 고단과 고독이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변시지의 그림 속엔 바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진일보된 정서가 있다. 바쇼가 애잔한 허무주의에 머물렀던 반면 변시지는 그걸 딛고 일어서는 원초적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둘은 같지만 다르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이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그렇게 탄생하고 사라지고 탄생했다. 색다른 관점이 예술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종이 오른쪽 위에 붉은 잉크 자국이 있다고 하자. 이것이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33%가 붉은 점이라고 대답했고 18%가 붉은 원이라고 답했다. 대부분 사람이 내놓을 대답이다. 7%의 응답자는 여백이라고 적었다. 관점을 옮겨 나머지 공간을 본 사람들이다.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연쇄상구균이라고 적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본다는 이야기다. 특기할 만한 건 붉다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답변도 40% 이상이었다. 일본 국기, 루돌프 사슴코, 눈동자, 핏방울, 표적, 정지 신호등이 그것이었다. 일상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이는 문제 해결형의 방식을 강조한다. 도끼와 나무와 망치와 톱이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나무를 고른 사람은 추상적 사고에 머무른 사람이다. 벌목공이라면 망치를 고를 것이다. 나무를 베는 일에 망치는 불필요하다. 크리에이터들은 스캠퍼(SCAMPER)라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문젯거리를 대체하거나 합치거나 적용하거나 변경하는 방식이다. 에드워드 데보노의 수평적 사고나 소수의 관점을 강조하는 역발상적 사고를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알게 된 칠곡 할매들의 시 속엔 조금 다른 방식이 숨어 있다. 소설가 김훈은 그녀들의 시상을 ‘놀랍도록 소중한 것’이라고 소개한다. 뒤늦게 글을 깨우친 그녀들은 삶에서 깨우친 단순명료한 시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다. ‘나는 백수라요 묵고 노는 백수 아무거도 안 하고 노는 백수 밭 쪼맨한데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그래도 종다.’(이분수, 나는 백수라요) ‘달팽이 달팽이 집을 짓는 달팽이 달팽이는 열쇄도 피로없고 자몰쇄도 피로없네.’(최재순, 달팽이) ‘살구를 땃다. 비가 와서 상처가 많이 났다. 아들이 가가라캐도 안가 간다. 한글 공부 배우는 학교에 가져갔더니 마카다 맛있게 잘 먹었다.’(이갑순, 살구) ‘일어나 느티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 하루하루가 느티나무 그림자를 따라 즐겁게 돌아갑니다.’(노선자, 느티나무)
그녀들은 대상이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녀들의 시가 신선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것은 때 묻지 않은 진정성 때문이다. 칠곡 할매들은 발상의 원천이 어떤 세련된 기교나 놀라운 노하우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넘쳐나는 세상에 칠곡 할매들의 무공해 발상법은 꽤 눈여겨볼 만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