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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강 Oct 16. 2024

10월 어느 날, 기분 좋은 일들의 목록

[일상 에세이]

아기가 밤새 깨지 않고 잤다.

나도 깨지 않고 6시간 30분 동안 잤다.

잠에서 깨어보니 강아지 두 마리가 오른팔 옆에 한 마리, 다리 사이에 한 마리씩 꼭 붙어있어 포근하다.

이불을 네모지게 개며 성공하는 사람의 첫 번째 습관이 '이불 개기'라는 말을 떠올린다.

잠에서 깬 아기가 방긋 웃는다.

아기가 꿀꺽꿀꺽, 분유를 잘 먹는다.

강아지들이 매일 먹는 지겨운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밥을 맛있게 먹는다.

찹찹, 강아지들이 물먹는 소리가 귀엽다.

샤워를 하는데 따뜻한 물이 잘 나온다.

아내가 새로 산 치약이 입안을 화하게, 깔끔하게 한다.

씻고 나니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겉옷만 바꿔 입을 예정이라 입을 옷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날씨가 적당히 쌀쌀하다.

공기가 신선하다.

비 온 뒤 나는 풀비린내가 상큼하다.

차가 현관에서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다.

위험하게 운전하는 차들을 요리조리 잘 피한다(어쩌면 내가 위험하게 운전하는 운전자일지도).

무사히 직장에 도착했다.

직원들과 아침인사를 나눈다.

예약자가 많지 않다.

오전 근무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아무도 진상을 부리지 않았다.

1층 단골카페에 간다.

요즘 거의 매일 보는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다.

오늘은 무엇을 마실까 기분 좋은 고민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저렴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새로 산 E-book을 다운로드한다. 요 네스뵈의 [칼], 한강의 [채식주의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공상과 글감들이 이리저리 섞였다 풀리고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커피 향이 은은하다.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페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본다.

소나무가 죽 늘어선 길을 걷는 어떤 사람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총총총,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경쾌하게 지나간다.

오후 근무시간도 지나갔다.

아무도 진상을 부리지 않았다.

지식이 부족해 도와주지 못한 환자가 없었다.

의료사고로 소송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뿌듯한 나른함과 피곤함을 느끼며 차의 시동을 건다.

지하철역과 공원 사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평안해 보인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화나게 하는 운전자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는 사람이 없다.

집 문 앞에 택배가 놓여있다.

집 문을 여니 강아지들이 달려 나온다.

몸을 비비고 손을 핥아주는 강아지들의 온기가 따뜻하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첫째 딸, 둘째 딸 모두 웃고 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름을 불러주니 더 크게 웃는다.

딸들은 오늘 다녀온 정기검진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흑현미와 백미가 섞인 밥에 김치, 어묵볶음, 깻잎무침, 낙지젓갈, 청국장찌개를 먹는다.


저녁 육아는 힘들었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포근한 이불을 덮고 눕는다.

강아지 한 마리가 몸으로 파고든다.

내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날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글 하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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