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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록 Feb 27. 2024

알레르기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알레르기 환자입니다

[알레르기 이야기]

나는 지독히도 성가신 알레르기 질환 환자로 살았다. 알레르기비염과 천식으로 시작한 알레르기 질환이 아토피피부염으로 이어져서 전 생애에 걸쳐 나를 괴롭혔다. 흐르는 콧물을 닦아 내느라 코는 늘 헐어있었고 코막힘이 심해 입으로만 숨을 쉬면서 구강구조가 변했다. 천식으로 밤을 새워 기침하고 가슴 통증에 괴로워했으며 아토피피부염이 심해지면서 급식을 먹지 못하고 혼자서만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닌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레르기를 정복하겠다는 위대한 학문적인 목표를 세웠다거나 역경을 극복한 드라마 같은 서사도 없었으나, 어쩌다 보니, 현재 나는 '알레르기내과' 의사가 되었고 알레르기 전문병원에 출근한다.


    우리는 여러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한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알레르기천식, 알레르기비염, 아토피피부염. 이 세 가지 질환은 서로 연관성이 깊고 동반해서 발생할 확률이 높은 질환들이다. 내가 이 세 가지 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환자다. 그 외에 두드러기, 혈관부종(눈, 입, 손, 발 등이 부어오르는 증상), 접촉성피부염, 약물 및 식품 알레르기, 아나필락시스, 면역결핍질환 등이 알레르기내과에서 다루는 질환들이다. 환자가 오면 먼저 증상을 듣고 주변 환경, 음식, 약물 등의 단서를 파악하여 알레르기 검사를 시행한다.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하고 나면 알레르기와 관련된 질환이 맞는지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장기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 대부분이므로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상담한다.


   이름도 생소한 알레르기내과. 내과의사면 내과의사지 알레르기내과의사는 무엇인가. 내과의사는 몇 가지 세부 전공을 추가로 할 수 있다. 일단 내과의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전공의(레지런트) 과정을 마치고 '내과전문의'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 후에 세부분과에서 1~2년을 추가로 수련하면 '내과분과전문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추가 수련기간을 전임의(펠로우)라고 하는데 전임의 수련기간 동안 분과전문의가 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춘 후 시험에 합격하면 비로소 내과분과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내가 전공의 수련을 받았던 모교의 대학병원에는 8개의 내과 세부분과가 있었다. 소화기, 호흡기, 심장, 신장, 혈액종양, 류마티스, 내분비, 감염으로 나누어진 세부분과를 1~2개월 간격으로 돌면서 일하고 공부했다. 그 후 전문의시험을 거쳐 내과전문의가 되었다. 원래 내과에는 알레르기내과를 포함해 총 9개 분과가 있는데 당시 모교병원에는 알레르기내과가 없었다. 내과전공의로 일을 하던 나조차도 처음에는 알레르기라는 분과가 있는지 몰랐을 정도로 알레르기내과는 생소한 분야다. 전국적으로 분과가 있는 병원의 수도 적고 분과전문의의 수도 적다.


<출처: dailymedi>


    2022년까지 조사된 전체 알레르기내과 분과전문의의 수는 전국적으로 166명에 불과하다. 3500명가량의 분과전문의가 있는 소화기내과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이다. 최근까지도 알레르기내과 분과전문의는 해마다 10명 미만으로 배출되고 있으며, 분과가 만들어진 첫 해에 16명을 배출한 이후 한 해도 10명 이상의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알레르기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기는 어렵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주변 건물에  항상 병원이 있고,  1차 병원에서도 각종 전문의가 날마다 환자를 직접 맞이하는 의료 초강국 대한민국에서도 알레르기 질환에 대해 속 시원히 알려주고 치료해 주는 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내가 사는 도시는 광역시이지만 나를 포함하여 단 3명의 알레르기내과 의사가 있다).


    알레르기가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치료만 잘하면 예후가 좋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올바른 방법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알레르기 질환인지 조차 모르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내 입장에서는 매일 보는 흔한 알레르기 질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짊어지고 온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아직도 생소한 분야이기에 여러 알레르기질환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짧은 글이지만 중요한 힌트를 얻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당신의 알레르기는 치료가 가능하다.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치료 기회를 얻으시도록, 열심히 진료하고 열심히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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