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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Jan 02. 2021

양말 한 짝

따듯한 햇살이 온몸을 간지럽히는 3월은 왠지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다. 학교 캠퍼스는 분홍빛과 노란빛으로 둘러싸였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기숙사 1층에 있는 식당은 많은 학생들로 바글바글하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나 보다. 운동부 특기생들이 절반 일반학생들이 절반이다. 이 기숙사는 운동부 학생들의 숙소다. 점심을 먹기 전 짐을 놓고 빨래를 널기 위해 기숙사로 올라갔다. 복도에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에는 짜장면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숙소에는 선배들과 동기들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수업을 끝내고 돌아온 나의 동기 한 명은 좀비처럼 걸어들어왔다. 눈이 반쯤 감겨 뭐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동기와 함께 세탁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 된 지 2시간이 지난듯한 빨랫감을 두 손으로 대충 집어 들고서 숙소로 들어왔다. 복도에는 팬티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먼지가 조금 묻었지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다. 빨래에서는 섬유 유연제 냄새와 쉰내가 섞여 있었다. 남아있는 옷걸이를 한 움큼 집어 들어 바닥에 던졌다. 선배가 잠시 깨는 듯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동기와 나는 들쥐처럼 숨죽여 빨래를 널었다. 


순식간에 빨래를 널고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에 내려갔다. 오늘 점심 메뉴를 보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매점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사들고 숙소로 올라갔다. 앞으로 2시간 정도 낮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알람이 울렸다. 숙면을 취한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욕을 하며 들어오는 선배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터덜터덜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너무 지겨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2시간 동안의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또다시 빨랫감을 모아서 세탁실로 향했다. 고참 선배들만 사용할 수 있는 2층 샤워실에는 선배들이 열심히 온몸을 닦고 있었다. 야간 수업이 있는지 몰랐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선배가 야구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자기 양말 한 짝이 없어졌으니 얼른 찾아오라고 화를 냈다. 아까 점심에 복도에 떨어진 팬티는 봤는데 양말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동기와 함께 실종한 양말 한 짝을 열심히 찾았다. 먼지가 그득한 복도, 세탁기 안, 빼곡히 붙어있는 옷들 사이사이, 운동복 바지 안쪽, 티셔츠 팔 안쪽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그 빌어먹을 양말 한 짝은 나오지 않았다. 선배가 또다시 화를 내며 말을 했다. 


오늘까지 못 찾으면 나가서 새 걸로 사 오라고. 목구멍 밖으로 욕이 나올뻔했지만 속으로 더 심한 욕을 하며 참았다. 너무 화가 나서 담배가 피고 싶었다. 갑자기 회의감이 들면서 양말 하나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때 동기가 양말 한 짝을 들고 오면서 나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축축하고 쉰내 나는 양말을 다시 빨래 건조대에 널었다. 창문 바깥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선배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생활은 할만하냐, 운동은 힘들지 않느냐, 선배가 잘해주냐,라고 물어왔을 때 나는 다 괜찮다고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복도에서 흐느끼면서 울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자야 하는데 자고 싶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텔레비전 불빛이 눈을 때렸다. 이어폰을 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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