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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Dec 19. 2020

슬픈 리어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리 들어오라는 친구 엄마의 함성, 멀리서 걸어오는 아빠를 따라서 함께 들어가는 아이들. 저녁노을빛의 놀이터는 싸늘하게 외로워 보였다. 아무도 없는 그네는 숨죽여 흔들린다. 혼자 남겨지는 게 자존심 상해서 모래 밖으로 나왔다. 손은 흙먼지로 가득하고 신발 안에 모래는 짜증 나게 거슬렸다. 집 앞 현관에 도착하여 신발을 벗었다. 신발 안의 흙을 털어내고 다시 신었다. 옆집 아줌마한테 걸리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해는 벌써 저물고 집은 온기가 없어 밖이랑 다를 게 없었다.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서 티비를 틀었다. 순간 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나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담배꽁초를 주워오면 한 개당 100원을 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집 앞 문구점에 오락기가 생각났다. 이따가 밤에 몰래 나가서 오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배꽁초가 많은 곳을 나는 알고 있다. 계단에는 담배꽁초가 정말 많았다. 그중에 제일 긴 것으로 주웠다. 7개를 주워서 할아버지에게 주었고 정확히 700원을 받았다. 집 복도에서 창밖을 보면 문방구 뒤에 오락기가 아주 잘 보였다. 날씨가 추웠는지 아무도 없었다. 아까 가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날씨처럼 금방 식어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감싸매고 티비를 봤다. 


더 오래 더 많이 놀고 싶어서 일찍 일어났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친구들이 늦잠을 많이 자는가 싶다. 혼자 놀고 있으면 나를 보고 친구들이 나올 것 같았다. 원래 이 시간에는 모두 나와있어야 할 시간인데 도무지 알 수 가없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새벽에 집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이 하나둘 놀이터로 모여들었고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놀이터 앞으로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우리 할아버지를 안다. 사실 동네 친구들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인지 다 알고 인사도 참 잘했다. 할아버지는 시커 먹게 때가 탄 옷을 입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리어카에는 많은 박스들과 바구니에 담긴 유리병들이 가득했다. 놀이터 쪽을 안 봤으면 했다. 차라리 빨리 지나쳐 버렸으면 했다.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 창피했다. 나는 끝까지 못 본척하고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놀이터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할아버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시 놀이터 쪽으로 안 왔으면 했다. 할아버지는 점점 멀어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술래가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할아버지는 쇠약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으며 매일 리어카를 끌면서 박스를 팔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때 나의 행동을 생각하면 할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창피했는지 하나밖에 없는 할아버지를 외면했을까라는 자책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보고 싶은 할아버지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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