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 Feb 09. 2023

 이혼의 징조를 알았더라면 - 1

이혼하면 어때 #6

결혼 후 최소 6~7년은 별문제 없이 지냈다. 아내는 이미 3년의 연애와 오랜 결혼생활로 내 성향을 잘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의 가족 문제였다.


나의 어머니는 파산과 회생을 거쳐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집 밖에서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무엇이든 사회 생활하기를 권유했고, 결국 보험판매 아줌마가 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가능할까 싶었는데, 인생의 굴곡이 워낙 심했던지라 보험판매를 금방 적응하고 어느 정도 수익이 생길 정도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결국 보험판매란 것이 지인 영업이 끝나면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지라, 매달 기본 실적을 채우기 위해 아들인 내 명의를 적극 활용했고, 그래도 부족한 수입은 내가 보조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몸이 아파 한 달 정도 쉬게 되었고, 주거하는 전셋집의 만기가 도래하여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바쁜 회사생활로 일정을 잊어버려 다음 날이 돼서야 전화를 드리고 안부를 물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날짜를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아 몰랐을 거라고 둘러대며 어머니의 서운함을 풀려고 했다.


사실 그동안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나를 필터 삼아 양쪽이 소통하곤 했는데, 그것은 내가 평생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사정 설명을 했다.


"어제가 이삿날인데 전화 한 통화 없다고 좀 삐지셨더라고. 당신은 몰라서 연락 못 했을 거라고, 나만 알고 있는데 깜빡했다고 했어. 그래도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니까 당신도 전화드리면 좋겠는데. 어때? 나한테 얘길 못 들어서 몰랐다고 하고."


아내는 미리 이사비용 보태라고 돈을 보냈었다면서 투덜거렸지만 전화는 친절하게 마무리했다.


며칠이 지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만데. 내가 저번 주에 **이랑 통화할 때 2만 원짜리 보험 하나만 해달라고 했고, 돈은 엄마가 낸다고 했어. 확인한 거니까 판매 모니터링 전화 오면 완료 좀 해달라고 전해줘."


여태껏 기본 실적을 채우기 위해 내 명의를 많이 쓰고 본인이 돈도 내면서 관리하셨는데, 이번에도 아내에게 그러나 싶어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 후 아내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 얘기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는,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생각해 본다고 했지,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정말 이런 식으로 자꾸 처리하시는 거 정말 싫어."


나는 어리둥절해 말했다.


"아니 엄마는 분명 당신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철석같이 알고 계시던데?"


아내는 더욱 성질을 내며 말했다.


"나는 분명 생각해 본다고만 했어. 그리고 그때 이사비용도 따로 드렸다고."


나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말했다.


"그럼 취소해? 그냥 돈도 엄마가 내는 건데 하면 안 돼?"

"아니. 취소하시라고 해. 난 이런 건 용납 못 해."


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인가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다시 드려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어머니는 당황해하며 취소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지만,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결국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한소리 했다.


"아니. 이삿날 연락 못 드린 건 둘째 치고, 한 달 동안 아프고 병원 다니셔서 일을 못했고, 생계를 위한 직장 때문에 당신 명의로 보험 한 개 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게다가 돈을 내달라는 것도 아닌데?"


아내도 지지 않고 말했다.


"이런 일이 처음인 줄 알아? 그리고 나는, 내 명의로 그렇게 쓸데없이 보험 드는 건 정말 싫어!"


맞는 얘기지만 서운함이 밀려왔고 결국 내 언성을 높아졌다.


"너네 부모님은 노후 걱정 없는 부잣집이고, 우리 엄마는 겨우 먹고사는 노인네야. 실적이나 수입을 위해 너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먹고살기 위해 며느리한테 그런 말을 한 건데 그것도 이해 못 한다고?"


아내는 이 얘기에 움찔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도 그렇긴 하네..."


그 대답에 더욱 흥분한 나는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쏟아냈다.


"네가 시댁이라고 있는 것은 우리 엄마 하난대, 남들처럼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댁이 우르르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수고스러울까 봐 몇 년 동안 우리 집에 방문 한번 안 하는 그런 사람한테 뭐가 그렇게 삐뚤어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왜!"


1년에 두어번 부부동반으로 왕래하는 가족은 내 어머니 뿐이었다. 아버지와 형은 여러가지 이유로 나조차도 관계가 소원했다. 누나와는 몇 년에 한 번 겨우 얼굴만 보는 사이였으니 결국 아내의 유일한 시댁 식구는 어머니 혼자가 전부였다. 명절 외의 소소한 방문이나 처리해드려야 할 일들은 내 어머니의 일이므로 당연히 내가 알아서 처리했다.


유일하게 내가 같이 짊어지자고 희망했던 단 하나의 요구를 부정하고 있는 사실에 그녀가 너무 미웠다.

하지 말아야 할 얘기까지 해버린 난, 곧 후회하며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분명 그렇게까지 할 말은 아니었고, 아내도 나름대로 자기 철학과 역할을 정해 어긋나게 하진 않았다.


다만 아내는 결혼하고 얼마 후부터 내 어머니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는데, 내가 보기엔 시집살이, 고부갈등이라고 보기엔 내 어머니는 너무 약자였다는 것이 속마음이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남들처럼 결혼할 때 그럴듯한 집이나 비용을 보조하지 못한 부모로서, 결혼 후 계속 처가에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내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입단속하며 계속 낮은 자세로 임했던 처량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스트레스가 있을지언정, 고부(姑婦)가 바뀐 것처럼 보인 그녀가 싫었고 그날부터 우리는 입을 닫고 대화 없이 살기 시작했다.




이전 05화 유리같은 행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