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것의 불편함

외로움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

by NaeilRnC

배경 : 혼자 사는 것은 자유롭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쓰고 싶은 방식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며칠 몸살로 이틀간 드러누워보니, 혼자 산다는 것이 사실은 ‘체온에 대한 그리움’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홀로 남는 집은 묘하게 더 차갑게 느껴진다. 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냉기가 아니라, 내가 기대어 쉴 어딘가가 사라진 듯한 차가움. 오늘은 혼자 사는 것의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 혼자 산다는 건 결핍과 마주하는 일이다.

혼자 살면 편하다고들 한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모든 선택이 온전히 나의 몫이니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생각보다 자주 불편함과 맞닿는다. 예를 들어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그렇다. 가족이 많을 때는 금세 쓰였던 양념 하나도, 혼자 살면 금방 유통기한과 싸우는 애물단지가 된다. 배추 한 포기를 사면 김치통 하나가 가득 차고, 며칠 지나지 않아 냉장고 구석에서는 시든 잎사귀들이 마지막을 기다린다. 결국 혼자 사는 사람에게 식재료는 늘 ‘과잉’으로 남고, 식사는 늘 ‘부족’으로 끝난다.


이틀을 앓아누웠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두통과 기침, 콧물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다. 평소 즐기던 담배도 한 개비 피울 기력조차 없었고, 밥도 겨우겨우 먹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존을 위해 밥을 욱여넣으면서 문득 슬픔이 밀려든다. 배달을 시킬까 고민도 했지만, 배달음식은 ‘혼자 아픈 사람’을 위한 양을 팔지 않는다. 대부분의 메뉴는 둘 이상이 먹어야 알맞은 양으로 나오고, 아픈 몸으로 그 많은 양을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식사는 이렇게 늘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 평화로웠던 고요함도 적막이 된다.

평소에는 고요한 집이 주는 평화가 좋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멈춘 TV 화면도, 나 혼자만의 동선도 모두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아픈 날의 집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 고요함이 갑자기 적막으로 변한다. 누워 있는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 상태를 확인하는 기척도 없다. 약을 먹고 잠에 들었다가도 “혹시 새벽에 열이 더 오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누군가에게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를 듣는 일, “죽 끓여줄까?”라는 말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혼자 아플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집은 그대로인데 나만 무너져 있는 느낌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아파 있는 시간은 일상의 공백이 아니라 ‘체온의 부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


□ 외로움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는 일

혼자 사는 자유는 분명 매력적이다. 내 방식대로 살 수 있고, 나만의 공간을 꾸릴 수 있으며, 관계의 피로로부터 벗어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감정의 무게를 함께 요구한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왔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집, 밥을 먹으며 아무 말 없이도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없는 식탁, 아플 때 얇은 담요보다 더 큰 안도감을 줄 체온이 없는 침대가 그렇다.


이 모든 순간이 혼자 사는 삶에서 가장 조용하게 쌓여가는 불편함이 된다.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절대 작지도 않은 불편함이 생활의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자꾸 쌓이고, 어느 날 청소하려고 보면 이미 제법 무게가 나가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아마 혼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그런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외로움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외로움을 설명할 말이 없어서 더 무거워지는 삶이 이어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혼자 사는 것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 자유에 숨어 있는 불편함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자유는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며, 그 돌봄은 때로 너무 외롭고, 때로 너무 조용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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