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언어는 사전이 필요하다
후인은 어느 날부터 알림음을 싫어하게 됐다.
띠링—
그 소리는 단순히 메시지가 왔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불안이 도착했고, 그 불안이 이제 내 몫이 됐다는 뜻이었다.
회사에서 대화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감정 중에서도 거의 한 가지만. 불안.
후인은 처음엔 일이 힘든 줄 알았다. 야근이 많아서 힘든 줄 알았다. 사람이 까다로워서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힘든 건 일이 아니라 언어였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구조였다. 회사에서 말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책임을 이동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회사의 문장들은 늘 비슷한 모양으로 온다.
공손하고, 짧고, 애매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안전한 문장일수록 누군가를 위험하게 만든다.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문장들은 예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치를 옮긴다.
책임을 아래로, 시간을 밤으로, 결정을 실무자의 손끝으로. 회사는 큰소리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회사는 말투와 침묵과 단답으로 사람을 훈련시킨다.
가장 짧은 말이 가장 강해지는 곳에서, 사람은 점점 더 길게 말하는 법을 잊는다.
후인은 자신이 바뀌는 걸 봤다.
메시지를 받으면 즉시 반응하고, 질문을 받으면 먼저 사과하고, “괜찮습니다”를 자동으로 치는 손가락.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는 방식도 회사가 배운 방식이 됐다.
“ㅇㅇ.”
“그냥.”
“전부 다.”
말이 짧아질수록 마음은 얇아졌다. 얇아진 마음은 쉽게 찢어지고, 찢어진 마음은 더 빨리 “네”를 친다.
후인은 그 루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말이 아니라 번역의 사전.
‘이 말은 무슨 뜻이지?’가 아니라 ‘이 말이 내게 무엇을 시키려는 거지?’로.
이 글은 후인이 모은 회사의 언어에 대한 기록이다. 정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의 언어는 정답을 싫어한다. 정답은 책임을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대신 이 글은 하나의 목적만 가진다.
자기 자신에게도 “ㅇㅇ”만 남기기 전에, 문장 하나로 숨을 쉬는 법을 다시 기억하는 것.
띠링—
알림은 또 울린다. 하지만 후인은 이제,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무너지지 않기로 한다.
무너지는 대신 번역하고, 번역하는 대신 묻고, 묻는 대신 경계를 세우기로 한다. 회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길게 말하고,
조금 더 정확하게 묻고,
조금 더 천천히 동의하는 것.
그게 후인이 선택한, 가장 조용한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