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회복과 ‘감사’의 분권화가 빠진 이야기
우리는 지방분권을 오래 이야기해 왔다.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기 시작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지방이 좋아졌다”는 체감은 왜 이렇게 약할까. 나는 그 이유를 두 개의 결핍에서 찾고 싶다. 첫째는 공동체이고, 둘째는 감사(감시·평가) 체계다. 분권은 결국 “권한을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버티는 힘”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구이동을 다룬 고전 이론은 한 가지를 반복해서 말한다. 사람은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기회와 환경의 불균형이 사람을 움직인다. 어디에 일자리가 있고, 어디에 교육이 있고,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에 미래가 있는지가인구의 이동을 만든다.
한국의 현실은 숫자로도 극단적이다. 이제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비수도권이 줄어드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그 빈자리는 단순히 “사람이 없다”의 문제가 아니다. 상권이 무너지고, 학교가 닫히고, 병원이 멀어지고, 결국 이웃이 사라진다. 인구감소는 지역경제의 위축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해체다.
일본에서 지방소멸을 먼저 겪은 마쓰다 히로야는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이 무섭게 와 닿는다. 지방의 문제를 ‘숫자’로만 보면 답이 없다. 지방소멸은 공동체가 붕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돌아보면 정책은 대체로 물리적 환경 개선에 익숙했다. 도로, 광장, 리모델링, 콘텐츠, 경관… 눈에 보이는 성과는 빠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게 ‘살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공동체는 시설이 아니라 관계로 살아난다.
이웃과의 신뢰, 서로 돕는 규범, 주민참여의 경험이 쌓여야 “우리 동네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연구들도 반복해서 말한다. 도시재생에서 주민참여는 단순히 주거환경 만족이 아니라 소속감과 이웃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참여가 공청회 수준에 머무르면 신뢰가 쌓이기 어렵다.
결국 지역활성화는 “공간에 사람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 투자하는 일이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다. 재정투입의 양이 아니라, 재정이 신뢰와 참여로 전환되는 과정이 정책의 성패를 가른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도입되면서 인구감소 대응은 제도화되었다. 그런데 집행률이 낮고, 어떤 곳은 “0%”라는 기록까지 나왔다. 이건 단순히 ‘업무가 밀렸다’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현상을 고리의 단절로 본다.
"사업기획→집행→성과평가→감사→환류"가 이어져야 하는데, 이 연결이 끊어지면 돈은 내려와도 정책은 쌓이지 않는다. 성과를 설계하지 못한 사업은 집행이 늦어지고, 집행이 늦으면 평가가 형식화되고, 평가가 형식화되면 감사는 규정 위반만 들여다보고, 결국 주민은 “또 보여주기”라고 판단한다. 정책이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여전히 중앙의 통제가 강하다. 국고보조금은 계획·집행·정산 전 과정에서 중앙이 깊게 개입한다. 공모사업은 ‘자율’이라는 말을 달고 있지만, 매뉴얼과 지표는 중앙이 쥐고 있다. 지방은 지역의 문제를 풀기보다, 중앙의 평가표에 맞춰 문서를 맞추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감사도 비슷하다. 감사가 중복되고 권한이 편중되면, 지방정부는 “주민을 위한 실험”을 하기보다 “감사에 걸리지 않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자율성은 위축되고, 책임성도 동시에 약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제가 강할수록 책임은 흐려진다. 책임은 권한과 함께 설계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권한만 일부 내려주고 책임은 중앙이 심판하는 방식으로 남겨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감사체계의 분권화’를 지방분권의 핵심 과제로 본다. 감사체계를 분권화한다는 건 “감사를 줄이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이 스스로 성과를 관리하고, 주민에게 투명해지도록 만드는 제도다.
해외에서는 이미 분권형 감사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감사원과 함께 지역 단위 감사원이 지방정부의 재정과 성과를 독립적으로 점검하고 결과를 공개한다. 스코틀랜드는 회계감사뿐 아니라 재정 지속가능성, 가치와 성과(value for money)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감사를 운영하며 정책학습과 책임성을 강화한다. 미국에서도 일부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시민 청원에 따라 성과감사를 실시하는 방식이 존재한다.
핵심은 같다. 감사를 ‘통제’로만 보지 않고, ‘학습과 책임’의 장치로 설계한다. 그리고 그 장치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 더 가까운 곳에서 작동한다.
지방분권의 성과는 권한이 얼마나 내려왔는지로 평가되지 않는다. 정책의 품질이 좋아졌는지, 주민이 신뢰하는지, 공동체가 회복되는지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방향은 분명하다.
공동체 회복: 관계망·신뢰·참여가 정책의 ‘바닥’이 되어야 한다.
감사체계의 분권화: 성과-평가-감사-환류를 지역이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자율·책임·참여의 결합: 분권은 권한 이양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운영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사업’을 더 늘리는 게 아니다. 살 이유를 만드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가 정책을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세우는 것이다. 지방분권의 다음 단계는, 아마도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