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번아우탄스(Homo burnoutans)

22. 성취가 남아도 자신이 줄어드는 인간

by NaeilRnC

호모 번아우탄스는 burnout (번아웃, 소진)에서 따온 말로,

일을 해내는 동안 성취는 쌓이는데 정작 자신은 점점 닳아 없어지는 인간을 뜻한다.

Homo burnoutans /ˈhoʊmoʊ ˈbɜːrnaʊt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니다. 번아웃은 “못 한다”가 아니라 “더는 못 견딘다”에 가깝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을 오래 꺼내 쓴 결과다.


호모 번아우탄스는 대부분 성실하다. 남들이 보기엔 유능하고, 책임감 있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는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나.”

“이번만 넘기면 돼.”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이 말들은 결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자신을 설득하는 주문이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만이

이런 말을 반복해서 자신을 움직인다. 호모 번아우탄스의 하루는 늘 꽉 차 있다.


시간이 꽉 찬 게 아니라, 여유가 꽉 찬 적이 없다. 할 일이 끝나면 쉬는 게 아니라, 다음 일을 미리 당긴다.

미리 당기는 건 성실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다. 몸이 무겁다. 잠을 잤는데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지친 느낌이 있다. 그래도 그는 한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더 큰 일이 될 것 같아서 한다.


그렇게 그는 또 하루를 “처리”한다. 처리한 것은 늘 많다. 메일을 답하고, 보고서를 내고, 회의를 하고, 조율하고, 수습한다. 성과는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만족은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진의 문제는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기 때문이다.


성취는 남는데, 성취를 느끼는 사람이 줄어든다.

호모 번아우탄스는 어느 순간부터 기쁨이 줄어든다.

좋아하던 일도 무덤덤해지고, 칭찬을 들어도 잠깐뿐이고, 쉬는 날이 와도 불안하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아무 느낌이 없지?”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번아웃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조용히 쌓인다. 하루하루의 ‘괜찮아’를 이자로 받아서 어느 날 한꺼번에 갚게 만든다. 그리고 번아웃의 가장 무서운 점은, 쉬면 낫는 게 아니라 쉬는 법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쉬는 동안에도 죄책감이 따라오고, 쉬는 동안에도 업무가 떠오르고, 쉬는 동안에도 자신이 무가치해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한다. 일이 자신을 망가뜨렸는데도, 일만이 자신을 증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열심히 사는 게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열심히 산 결과, 삶이 남는 게 아니라 ‘일만 남는 것’이다.


당신이 요즘 쌓고 있는 성취는 무엇인가. 그 성취를 쌓는 동안, 당신은 얼마나 줄어들었나.

그리고 당신이 줄어든 걸, 누가 알아주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