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보여주는 것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자르면서 문득 쇼츠에서 봤던 면도 asmr영상이 떠올랐다. 수염이 덥수룩한 서양남자가 거품부터 만들고, 따뜻한 수건으로 수염을 불리고, 기성면도기가 아닌 수제 칼날로 슥슥 면도를 하는 영상이었다.
남자가 면도하는 장면 따위 소재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은 모두 소재다. 그거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필자는 클렌징폼으로 거품을 만들고, 따뜻한 수건 따위는 안 쓰며, 군대에서 후임들 보급품을 뺏아 모은 면도날을 5년 동안 사용했다. 그러니 저런 정성스러운 면도 영상이 너무 신기했던 거다.
심지어 가족식사로 몇십만 몇백만 구독자를 얻은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궁금하긴 하다. 필자도 화목한 가족식사라는 장면을 본 적이 없으니까.
카페에서 만드는 음료 영상이 몇 백 만뷰가 되고(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니까)
식당의 음식 준비 영상이 몇 백 만뷰가 되고(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으니까)
사업가들의 이야기가 소재가 되고(우리 주변에 잘 안 보이니까)
무슨 노래 들으세요도 소재가 된다(궁금했는데 물어볼 생각을 못했으니까)
애기들이 어른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소재가 된다(우리 주변에 애기가 없나?)
심지어 어제는 타일시공과 줄눈시공 등 시공을 소재로 해외에서 몇백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채널도 봤다.
이런 거도 관심 가지나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 인테리어 시공이란 것도 시공자들 외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긴 하다. 시각적으로 딱 보여줄 수 있고 자막이나 언어도 필요 없다. 타깃국가마저도 넓힐 수 있는 완벽한 소재인 거다.
무엇이든 소재가 된다. 대신 거기서 어떤 걸 남들이 보고 싶어 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있어야겠다.
그런 관점에서 요즘 남들이 뭘 보고 싶어 할지 고민 안 하고 쓴 글들이 많아서 조금 민망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