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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기 Oct 26. 2018

'건물주-세입자' 분쟁 씨앗 권리금, 없어져야 하나

[칼럼], 프레시안, 2017-01-16

[칼럼] 『[권리금의 유혹 下] '악덕 건물주의 사회적 평판 추락시키기 운동'을 제안한다』, 프레시안, 2017-01-16, https://bit.ly/2yNAtl7



'임차인 내쫓김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공론화될 때마다 군중은 늘 다음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권리금은 사라져야 한다!" 


공씨책방에 대한 필자의 글에도 어김없이 비슷한 댓글이 달릴 것이다. 이하, 그러한 댓글에 대한 필자의 '사전적 대댓글'이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권리금의 유혹 上] 공씨책방은 곧 검은 옷 입은 사내들과 마주할 것이다.)


필자는 "권리금은 사라져야 한다!"라는 주장에 심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선 그 주장이 너무나도 급진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권리금은 사라져야 한다!"라는 주장에 보통으로 통용되는 근거를 더하면 다음의 명제가 도출된다.


건물주(임대인)와 임차인이 마찰을 빚는 이유의 태반은 권리금에 있다(근거). → 따라서 권리금은 사라져야 한다(주장)! 


이상의 흐름에는 '원인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확하고도 수학적인 사고방식이 녹아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미 권리금을 치르고 시장에 진입한 기존 임차인의 피해와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관습은 깡그리 무시하고, 사회의 질서를 아예 새로 쓰겠다는 혁명적인 태도, 그리고 무책임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현재 주어진 것으로서 존재하는 권리금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네 지독한 불평등 대부분의 원인이 토지의 사적 소유에 기인하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모두 박탈하여야 한다!"라는 주장만큼이나 급진적이다. 한국의 정치·경제 토양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면 필시 "빨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급진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급진적으로 하는 것이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더 나은 사안에 대해선, 틀림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처럼. 그런데 권리금 문제는 그렇게 다룰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권리금을 없애려면 권리금이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답이 있어야 할 터인데, 현재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한번 따져보자.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을 다음의 말로 정의 내리고 있다(제10조의3 제1항).  


권리금이란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에서 영업을 하는 자 또는 영업을 하려는 자가 영업시설·비품,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상가건물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이용대가로써 임대인,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차임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를 말한다. 


위 문장은, 그간 누적된 판례에 기초한 것이다. 즉, 최소한 법률적으로는 권리금의 정의가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해당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아직은 권리금을 없앨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필자의 지금 이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아닌지는, 이상의 정의에 따른 권리금의 요구 및 수수가 내일부터 금지된다는 가정법만으로도 쉽게 증거 가능하다.  


(지금부터는 '가정'이다.) 내일부터 권리금이 사라진다. 한편 모레에는, 구로동에서 C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하는 임차인 A가, 신규 임차인 B에게 가게의 모든 것(상호, 주방 시설, 요리 비법 등)을 넘겨준다. 그러나 기존 임차인 A는, 신규 임차인 B에게 그에 따른 대가를 단 한 푼도 요구할 수도, 또 받을 수 없다. 그렇다. 권리금이 사라지면,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양도하면서도, 그 대가를 조금도 받을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권리금이 있을까 


한편,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의 소위 선진국에서도, 우리나라의 권리금과 유사한 개념이 존재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쌀로 밥 짓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기존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영업시설 등을 양도하는 일이, 다른 나라라고 해서 어찌 없겠는가. 우리나라의 권리금 개념이 혼란스러운 것처럼, 그들 나라의 권리금 비슷한 것들 역시도 하나의 똑 부러지는 형식과 개념을 정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 나라엔 '건물주에 의한 권리금 약탈'이 일상적이지 않다. 임대차 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정비되어있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는 임차인의 영업권을 일종의 '소유권'으로 여기고 있다. 만약 건물주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한 경우에는, 임차인이 해당 가게를 잃음으로써 입게 되는 영업손실(점포의 이전, 고객의 이탈 등으로 인한 손해)을 건물주가 보상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이른바 '퇴거 보상금' 장치는, 비단 프랑스만이 아닌 위에서 언급된 다른 두 나라(영국, 일본)의 임대차 제도에도 모두 녹아있다.  


광복 이전부터 있었던 권리금 


▲1930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권리금 관련 기사


우리나라 권리금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언론보도를 추적해 보면, 광복 이전부터 권리금이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권리금이 법제화된 것은 2015년 5월의 일이다. 무려 100여 년 동안이나 권리금이 제도 바깥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도 정말이지 지독하리만큼이나 늦게 제정되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모태(母胎)로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1981년 3월에 처음 시행되었다. 그 뒤로 20년도 더 지난 2002년 11월에야 비로소 첫 시행된 법률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다. 정말이지 엄청난 갭(gap)이지 않은가!  


악덕 건물주의 사회적 평판 추락시키기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현재 그 소명을 다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일말의 이견도 없다. 권리금 약탈 현상은, 임대차 제도가 정비되기까지의 과도기, 그 빈틈에 기생하여 창궐하는 하나의 사회적 바이러스다. 하지만 각종의 절차가 요구되는 법률 개정은, 건물주의 입에서 발화되는 "나가!"라는 말 한마디의 속도를 눈곱만치도 따르질 못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임대차제도가 정비되기까지의 무방비 시간에 우리를 기꺼이 지켜줄, 어떤 '초 법률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 장치의 하나로서, '악덕 건물주에 대한 사회적 평판 추락시키기 운동'을 제안한다. 약탈을 동경하고 긍정하며 탐닉하는 사회에서는, 약탈을 죄악으로 여기는 자도 감히 약탈에 가담하고 마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는 '권리금 약탈을 상가 재테크라고 부르며' 딱 그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 각자의 삶터에서 만이라도 전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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