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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025 국가안보전략상 지정학적 인식 변화

인도태평양 국가에서 서반구의 요새로

by 쿠쿠루
화이트홀 브리핑은 실무와 연구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최신 안보 이슈를 분석합니다. 뉴스 요약을 넘어, 저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3-Point Summary

1. 2025.12.5.(금) 공개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의 가장 중대한 변화는 미국의 지정학적 정체성의 재규정이라 생각됩니다.

2. 트럼프 1기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점차 강조, 심화되어 오던 인도태평양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먼로주의와 결합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로의 이동으로 조정되었고, 인도태평양은 가치나 지향성이 제외된 아시아라는 지리적 표현으로 타자화되었습니다.

3. 트럼프 행정부의 세부 정책 전반은 이같은 인식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기존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국들은 미국의 인식 변화에 조응하는 한편, 역내 질서의 복원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자체적 노력도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외국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을 번역한 것이라 다소 이질감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0. 들어가는 말


2025년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전략(NSS)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미국의 지정학적 관점이 재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을 넘어, 세계 지도에서 미국이 자신의 위치를 정의하는 방식상 지각변동을 의미합니다.


1. 더 이상 인도-태평양 국가가 아니다 (No longer an Indo-Pacific power)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 미국은 스스로를 '인도-태평양 국가'로 규정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는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를 통해 심화·확장되어 왔으며, 이 틀 안에서 해당 지역은 미국이 함께 살아가고 번영하는 운명 공동체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2025 NSS는 미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철수시켜 '서반구'로 정의된 본토의 성역으로 재배치합니다. 이러한 재조정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본토를 차단하기 위해 고안된 인식적 요새화의 기틀을 마련하며, 미주 대륙 전체를 배타적이고 방어적인 공간으로 재건합니다.


2. 타자로서의 아시아 (Asia as The Other)


반면, 기존의 '인도-태평양'은 '아시아'로 재정의되고 대상화되었습니다. 인도-태평양 개념은 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하위 개념으로 배치되었으며, 주로 경제적, 전략적, 군사적 중요성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2025 NSS에서 두 개념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를 문서 항목상 상위 범주로 채택한 것은 해당 지역을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확보해야 할 전장이자 시장으로 보는 관점을 강화합니다. 즉, 가치 지향적인 인도-태평양 담론에 비해 더 직관적이고 미국 자신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아시아'라는 지리적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구분과 위계가 드러납니다.


또한 서반구가 미국의 핵심 안보 요새로 재정의됨에 따라, 아시아의 성격은 외부의 객체(object)로 변모했습니다. 인도-태평양은 더 이상 미국이 소속된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본토의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성공적으로 경쟁해야만 하는, '여기가 아닌 저기(There)'가 되었습니다.


3. 기능의 분화


인식의 전환은 기능 분할 전략을 통해 정책으로 구현됩니다. 첫째, 지금까지 아시아가 맡아왔던 세계의 공장 역할은 조정되어야 합니다. 2025 NSS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통해 아시아에서 핵심 공급망과 제조업을 빼내 서반구라는 안전한 요새로 이식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합니다.


반면, 안보의 최전선은 여전히 인태 지역에도 남아 있지만, 그 목적은 경쟁자들이 서반구 요새를 위협할 수 없도록 원거리에서 억지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역내 동맹국들은 더 큰 책임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미국은 그러한 억지의 달성 여부와는 별개로, 림랜드(유라시아 주변부)나 유라시아 심장부(Heartland)를 통제한다는 고전적 지정학 논리보다 미주 대륙의 생존(continental survival)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4. 정책적 함의


2025 NSS는 미국이 국제 체제의 관리보다는 서반구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 수축하는 초강대국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맹 관계가 점차 거래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억지력 제공, 공급망 재배치, 기술적 재편을 통해 서반구의 대륙 요새를 강화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있어 우선 과제는 이 새로운 성역(sanctuary)의 공급망 깊숙이 파고들어, 대륙 요새화의 핵심 이해당사자로서 자신의 불가결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은 미국의 반구적(半球的) 축소에 대비해 헷징 전략을 취할 필요도 있습니다. 즉, 기능적인 소다자(minilateral) 네트워크를 통해 림랜드 국가들 간의 수평적 연대를 구축하고, 공유된 지정학적 서사를 개발하며, 미국이 짐을 덜고자 할 때 더 큰 안보 부담을 짊어질 수 있는 지역 아키텍처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이는 인태 지역에서의 정치적 행위성을 지켜나가는 한편,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이 먼 요새가 아니라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통합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세계가 지금 마주한 것은 이제 세계 경찰이 아니라, 장부와 총을 든 요새 관리인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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