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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n Nov 09. 2024

보편적 미학을 사유하는 스튜디오 신유의 여정

스튜디오 신유 2주년 개인전 <線線선선>

© 식물관PH

20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시작한 로컬 목공방 겸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신유(신용섭, 유승민)’. 지난 2019년 스튜디오 신유가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지 2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돌아보고 더욱 확장된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개인전 <線線선선>이 오는 9월 26일까지 식물관PH에서 열린다.

© 식물관PH

스튜디오 신유는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직선과 곡선처럼 서로 다른 두 가치와 특성을 품는 보편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유한다. 스튜디오의 대표작 ‘린LIN 테이블’에선 그들이 추구하는 철학과 메시지가 온전히 드러난다. 숲과 라인line을 모티프로 디자인 한 린 테이블은 동서양 공통의 건축술인 기둥-보 구조를 기반으로, 가장 보편적인 선이라는 요소를 적용해 건설한 가구이다. 한편, 테이블의 선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선을 의미한다. 숲이 가진 선은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다. 린 테이블을 만드는 재료인 나무와 철은 각각 ‘자연’과 ‘인위’를 상징한다. 이는 자연을 토대로 인류가 쌓아올린 문화와도 같다. 린은 재료의 조합 그 자체로 자연과 인위 사이 인류의 균형, 인류와 무형의 공간을 이어주는 전이공간으로서 기능한다. 

© 식물관PH

이번 전시에서 스튜디오 신유는 작품을 공간에 단순히 두는 것이 아닌,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전이적 가구’로서 대표작 린 컬렉션을 재구성한다. 건축에서 ‘전이 공간’이라는 용어는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이다. 따라서 전이 공간은 각기 다른 두 공간 사이에서 기능 혹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 공간의 맥락 속에서 전이적 가구가 된 신유의 작업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품어준다.

© 식물관PH

식물관 1층을 들어서는 순간, 린 테이블이 형태와 비율을 유지한 채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로 스케일업 되어 나타난다. 검은색 선이 모여 만들어진 구조물의 스케일에 순간 압도되지만, 이내 오브제 내부에 펼쳐진 공간과 식물들의 파편이 눈에 들어온다. 린 테이블은 외부에서 보면 문처럼 바람과 공간이 통하는 가운데 공간을 가지며, 테이블 앞에 직접 앉아 내부를 바라보면 외부에서 보이지 않던 가는 선들의 조합 사이로 연결된 다양한 공간이 나타난다. 사방이 막힌 덩어리가 아닌, 공간 속에서 주변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이적 가구로서 린 테이블의 특징이 스케일업 된 오브제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것이다.

© 식물관PH

식물관의 2층 라운지는 1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커피를 주문한 뒤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으면, 또 다른 전이적 공간이 앉아 있는 시선 아래로 펼쳐진다. 앞서 1층에서 본 거대한 린 테이블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데 이때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선들이 얽히며 쌓인 구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을 다른 시선에서 감상할 수 있는 2층은 1층과 3층을 자연스럽게 잇는 전이적 공간이 된다.

© 식물관PH

1층과 2층이 직선을 통해 전이적 공간을 번역한다면, 3층은 나선을 통해 중립적 시간을 표현한다. 세 번째 공간을 들여다보기 위해 스튜디오 신유는 다시 한번 린 테이블을 되짚는다. 린 테이블은 직선과 곡선의 중첩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에서 온 재료인 목재가 가진 본연의 선을 전통 공예 기법인 낙송법을 이용해 생명감을 불어 넣었고, 그 위에 인간이 자연해서 추출한 인공물인 철을 균형 있게 겹쳐 쌓아올렸다. 자연의 불규칙하고 다양한 흐름의 곡선들과 인공물이 가진 특유의 곧게 뻗은 직선의 조합이 린 테이블의 미학적 특징이다.

© 식물관PH

나선은 직선과 곡선의 조합이다. 기독교 문화로 대표되는 서양의 시간관은 현생에서 천국까지 일직선으로 흐른다. 반면, 불교로 대표되는 동양의 시간관은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계절처럼 생과 멸을 반복한다. 그리고 동서양 문화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첩되고 있는 현대,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동시에 반복된다. 전시 공간의 중심에 놓인 린 테이블과 그것을 향해 나선으로 펼쳐진 조약돌은 나선으로 흐르는 중립적 시간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시간은 나선으로 흐른다.

© 식물관PH

전이적 공간에 놓여 하나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면서도 현대의 보편적 미학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가 돋보이는 린 컬렉션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나선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좋은 디자인과 보편적인 미학을 조형 언어로 번역하는 스튜디오 신유의 다음 여정은 어디로 향할까.


스튜디오 신유 개인전 <線線선선>

일시: 2021.7.12 - 2021.9.26

장소: 식물관PH,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4길 24

문의: 02-445-0405, FNO@SIKMULG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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