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양 스튜디오의 향 브랜드
시간 여행자 ‘보Vo’는 메타버스의 가상 공간 속에서 미래와 우주를 여행하며 살아간다. 여정을 통해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마주한 보. 그는 자기의 경험을 ‘인공 자연' ‘이국' ‘브이루빈' ‘지성의 향' ‘스위트 코스모' 총 다섯가지 글과 향으로 기록한다. 미래 속 경험을 품은 보의 서사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의식적인 질문들이 녹아있다.
5월의 어느 날, 보의 시간이 담긴 향과 미래를 여행하는 포털 즉, 시간 주머니 <시낭>은 세운상가에 불시착한다. 전자기기 매장들이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곳에 자리한 시낭은 주변 상점들과 통일된 형태의 외관으로 자연스레 존재한다. 하지만 시낭 내부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의 파편처럼 낯설고 이질적이다. 보의 향수들이 우주 쓰레기를 연상시키는 미지의 광물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전시된 풍경은 깊은 시각적 잔상을 남긴다. 한편 쇼룸을 가득 채운 미래적이며 감성적인 향의 조향 방법 또한 독특한데 이는 기존의 조향사가 아닌 웹을 통해 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시낭만의 독자적인 조합 프로그램을 이용해 선보이는 방식을 활용한 것. 이처럼 브랜드를 구성하는 모든 유무형의 요소에서 우주와 미래를 품은 일관적인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향이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더 나은 미래, 긍정적 변화를 위한 담론을 제시하는 시낭. 브랜드를 기획한 양태오 디자이너를 만나 시낭과 시간 여행자 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낭 대표
_ 시낭은 어떤 브랜드인지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시간 주머니라는 뜻을 가진 시낭은 제가 쓴 다섯 편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향을 제안해요. 시낭이란 소재는 소설가 복거일 님이 쓰신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소설에서 큰 영감을 받았죠. 소설을 보면 한 사대부가 시간 주머니를 타고 조선시대처럼 먼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반대로 저는 시간 주머니를 타고 2500년대 처럼 굉장히 먼 미래, 세기말로 떠나는 스토리를 구상했어요.
_ 디자이너님은 주로 한국의 전통 그리고 현대적인 미감의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전개해왔죠. 이번에 선보이는 시낭은 지금까지 선보여온 디자인과 결이 달라 인상적입니다. 우주와 우주의 조향사. 어쩌면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작업 자체가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그리는 일이에요. 저는 언제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지어 생각하죠. 이번에는 미래에 중점을 둔 브랜드를 선보이고 싶었고요. 디자인을 하며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시낭의 다섯 가지 픽션과 향을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그러한 물음을 제시하고요. 제가 이번에 선보인 미래는 상당히 비관적이에요. 인간은 더 이상 지적 활동과 사고를 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대신 내려주는 AI에 의존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시대를 표현하거나 계속된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지구의 생물은 대멸종하고 결국 달로 이주하게 된 인류를 상상하죠. 각각의 소설은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되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행동을 취해서 지금의 삶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이렇듯 머지않아 도래할 미래에 대한 담론을 펼쳐놓는 거죠. 그런 점에서 브랜드가 단순히 비주얼적으로 우주를 표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_ 시낭은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님의 고민이 집약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시낭 역시 전혀 다른 맥락의 디자인이 아닌, 지금까지 제가 전개해 온 프로젝트와도 일맥상통해요. 저는 북촌에 살기 시작한 후로 전통과 오랜 시간을 머금은 귀중한 골목, 한옥들이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 왔어요. 이런 현상을 경험하며 ‘이게 과연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것인가? 문화가 하나의 장식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어떤 액션을 취할 수 있을까?’와 같은 다양한 화두가 제 안에서 생겨났어요. 디자이너로서 걱정,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올바른 미래를 어떻게 제안할 수 있겠냐는 고민은 시낭으로 이어졌죠.
_ 그렇다면 그런 이야기들이 시낭의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쇼룸의 경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주인공 보는 세운상가*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매장 역시 세운상가에 오픈을 하게 됐죠. 그리고 보는 자신의 여행기를 향으로 기록하는데요. 그가 모아 놓은 향이 담긴 캐비넷이 이곳에서 열리게 된 거죠. 시간 여행자가 우주와 시간을 여행하는 포털 또한 쇼룸에 마련돼 있고요. 공간을 채우는 소품과 가구 역시 우주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하나의 예로, 우주에서 날아 들어온 우주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이 큰 문제인데요. 디스토피아적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돌들을 매장에서 함께 보여주고 있죠. 한편 시낭은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해요.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비닐을 사용하고, 향수 포장은 별도의 박스 패키지 대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펠트 파우치를 제작해 담아드리죠. 시간 여행이 콘셉트인 만큼 항상 함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패키지를 만들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모든 그래픽은 미래적인 이미지로 디자인하고 있죠.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 스튜디오와 작업을 했는데요. DEGS: Creative Consultancy(크리에이티브 컨설턴시 덱스)에서 시낭의 로고와 VR을 제작해 굉장히 흥미롭고 미래적인 비주얼을 만날 수 있어요.
*세운상가: 2022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 지구의 새로운 그림을 발표했다. 그의 의지대로 바뀐다면, 세운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진양상가를 잇는 거대한 복합건물은 철거되고 한양도성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길은 녹지로 바뀐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 설계로 1967년 준공되었다.
양태오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2편에서 이어집니다.